김연아의 맥주광고
김연아의 맥주광고
  •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국중독정신의학회
  • 승인 2012.06.21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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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부터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가 맥주광고에 등장했다. 음악에 맞춰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인기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주류 광고에 등장하는 것은 몇 가지 사실을 간과한 불편한 광고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스타가 출연하는 광고가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력을 너무 낮게 판단하고 있다. ‘어차피 누군가는 CF를 찍을 텐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들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스포츠 스타들은 건강하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운동경기라는 특성상 규칙을 준수하고, 바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다.

그런데 광고 속의 스타들은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거나, 소주를 흔들어 마신다. 평소에 스타들이 가지고 있던 좋은 이미지 때문에 상품도 당연히 좋은 것으로 낙인된다.

국민들의 머릿속에도 맥주는 시원하고 부드러운 것, 소주는 여성들도 부담없이 마시는 음료처럼 인식된다. 물론 음주광고는 늦은 시간에만 허용되기 때문에 광고를 보기도 힘들고, 한번 봤다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거나, 알코올 중독으로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문제는 다르다.

청소년기는 정체성의 혼란과 감정의 혼란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그래서 마음을 잡아줄 무언가를 찾는다. 한류바람을 일으키는 아이돌 스타들이나, 스포츠 스타들은 청소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술에 대한 생각도 변화시킨다. 스타들의 맥주 광고는 전 국민의 음주에 관한 갈망을 유도한다. 여기에는 청소년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음주가 미치는 폐해를 너무 과소평가한 문제가 있다. ‘술 좀 마시는 게 어때서?’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 술을 마시는 것은 불법적인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술은 분명히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는 해로운 물질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 국민의 16%가량이 음주에 따른 질병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의 경우는 25%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다. 알코올 중독자로 알려진 국민이 약 200만명으로 추정되며, 음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이 연간 24조원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알코올 관련 질환은 워낙 재발할 확률이 높고 가족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알코올 중독의 치료는 재발과의 전쟁인데, 그 이유는 중독자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술에 대한 긍정적 생각과 이미지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초기 경험과 술과 관련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는 반복적인 주류 광고를 통해 이것이 강화된다. 어린 나이에 음주를 시작할수록 뇌 속의 변연계와 전두엽이 완전히 성숙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잘못된 인지가 심어지기 쉽다.

음주에 대한 긍정적 생각은 과음과 폭음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으며 잘못된 음주 습관은 다양한 음주 폐해로 연결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류의 판매와 광고에 더 강력한 규제정책을 펼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규제정책은 실제 주류의 소비를 규제하기에는 실효성이 매우 낮은 형식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청소년에 대한 주류 판매 제한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0년 전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지금의 두 배인 80%였고, 담배가 회충을 죽인다거나, 참는 것보다는 피우는 것이 스트레스가 풀려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잘못된 생각과 태도들이 바로잡힌 것은 미디어를 이용한 공영 광고의 힘이 컸다. 이제는 알코올 문제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주류 광고와 판매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규제정책의 시행뿐만 아니라 알코올로 인한 피해를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시기이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주류 광고가 아닌 음주문화 바꾸기 운동이나 공익광고에 자주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국중독정신의학회 홍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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