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사건’에서 피해자를 탓하는 이유
‘끔찍한 사건’에서 피해자를 탓하는 이유
  • 장은영 한양대 구리병원 교수
  • 승인 2014.08.14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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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미리미리 좀 조심했어야지’ ‘아무한테나 그런 일이 생기나. 다 자기가 맞을 짓을 해서 그런 거지’ ‘그럴만한 여지를 줬으니까 그렇지’ ‘목숨을 걸고 반항하면 누가 계속 그러겠어’···.

당신은 이 말들이 어떤 상황에서 등장하는 반응인지 상상할 수 있는가? 누군가 큰 잘못을 했거나 매우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 때 하는 말처럼 들릴 것이다. 또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가해자가 하는 말이 아닌가 추측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건을 전해들은 제삼자도 종종 이런 반응을 보이곤 한다. 가장 전형적인 경우가 성폭력피해자를 비난하고 탓하는 사례들이다. 최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군대내 폭력희생자를 두고도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즉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피해자를 탓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왜 발생할까? 제삼자가 중립적이거나 현명한 판단을 하기 힘들만큼 정보가 왜곡됐을 수도 있고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해자의 입장이 더 잘 이해될만한 사유이거나 자기의 실리와 관련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들을 배제하고라도 제삼자인 관찰자들이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세상이 비교적 공평하다고 믿는 마음이 강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나 학대를 겪게 된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행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건에는 이유와 원인이 있다고 믿게 되고 세상의 규칙을 안다고 착각하게 된다. 또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위안을 얻게 된다. 게다가 원인을 제공한 이들에게만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고 믿으면 세상이 어느 정도 공평하게 돌아간다는 안도감을 경험한다. 따라서 스스로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노력하면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안전할 것ㅇ,로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희생자나 피해자를 탓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불공평한 세상에 눈과 귀를 닫고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게 한다. 잔인하고 참혹한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도 둔화시킨다.

최근 보도된 군대 내 폭력사건의 피해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기제가 작동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심지어 피해자를 탓하는 ‘맞을 만해서 맞은 거다’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사건의 잘잘못을 정당하게 가려내는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통제가능하다고 믿으며 위안과 안도감을 얻을까, 아니면 세상에는 통제가능하거나 공정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할까? 후자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할 일은 매우 간단하다. 즉 피해자와 희생자를 탓하지 않으면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한 상황이라면 빠른 결론을 얻고자 조급해하지 않으면 된다.

다만 지금껏 필자가 설명한 현상과 이에 내재한 기제가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실리를 위해 활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앞서 설명한 내용은 순수한 관찰자에게 발생하는 현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관찰자가 희생자를 탓하도록 부추기는 일도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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