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심장병 어린이의 눈망울
몽골 심장병 어린이의 눈망울
  • 김웅한 |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 승인 2012.07.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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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1월, 몽골의 선천성 복잡심장질환 아기(당시 생후 4개월)를 한국에 초청해 수술을 했다. 2007년 10월에 라파엘클리닉(국내 외국인 의료봉사 단체) 인터내셔널의 몽골 첫 의료봉사 캠프에 참가했던 소아과 의사가 그 아이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후 몽골 심장병 어린이 초청 수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몽골에는 심장병을 수술할 수 있는 전문 의료인력이 없어 현지 수술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린이 심장 수술 환경도 조성되어 있지 않아 심장전문의 파견 수술 또한 어려웠다. 초청 수술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2008년 9월에 두번째 수술(당시 생후 12개월)을 했고, 2011년 국제로타리클럽과 협력해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에서 23명을 초청해 수술했다. 올해는 이미 25명을 수술했다.

현재도 몽골에서 심장병 어린이를 수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술 전담병원에서는 대개 5세 이상의 아이들 중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만 수술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는 심한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많은 몽골 어린이가 조기에 사망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수술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온 환아 중 한 명은 복잡기형에 수술 시기를 상당히 놓쳐 수술 후 회복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웠다. 보호자로 온 ‘어린 엄마’에게 “수술 시기가 늦어서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한 아이의 심장과 폐 손상이 심하다. 수술 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수술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몽골에 있는 가족과 전화로 상의해 보겠다고 자리를 비웠던 아이 엄마는 붉어진 눈으로 돌아와 “한국 의사가 못 하면 세상 어디를 가도 내 아이를 살릴 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죽더라도 수술을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술 후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딸아이의 손과 발을 닦아주는 내내 그 엄마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수술 후 8일 만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회복되어 건강한 심장을 가지고 몽골로 돌아갔다. 엄마는 “아이를 봉사할 줄 아는 의사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옆에서 장난감 청진기로 곰돌이를 진찰하던 아이를 보며 엄마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얼마 전 현지 검진차 몽골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분명히 오전에 검진을 받은 아이인데, 우리가 그날 검진을 끝내고 병원을 나서는데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우리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왜 아직 여기 있느냐”고 물으니 “오전에 검진이 끝나고 우리 아이가 한국에 갈 수 있을지 걱정되어 스님께 가서 여쭤보니 이번에 못 갈 것이라고 하셔서 다시 왔다. 우리 아이를 좀 살려줄 수 있겠느냐”고 한다(몽골인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고 있고 중대사를 결정할 때 스님을 찾아 조언을 구한다).

마음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수술을 해주고 싶었지만, 한정된 자원은 모든 아이의 수술을 허락하지 않는다. 선천성 심장병은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수술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시기를 놓치기 전에 꺼져가는 생명들을 살려내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몽골 심장병 어린이 수술에 관심을 가지고 각국으로 초청하여 수술하고 있다.

하지만 1년에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초청 수술이 수많은 몽골의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최선이 될 수는 없다. 결국 몽골 의료진의 자립화와 열악한 의료환경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 간, 그리고 한-몽 의료진 간의 협력이 절실하다.

더불어 병실에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웃음을 띠며 아이에게 요구르트를 나눠주고, 멋쩍은 걸음으로 다가와 딸기를 전해주던 한국의 보호자들처럼 모두의 따뜻한 관심 또한 더욱 필요한 때이다. 몽골인이든 한국인이든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몽골의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의 눈망울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김웅한 |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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