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먹는 사과, 정말 독인가
저녁에 먹는 사과, 정말 독인가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gamchoo@hanmail.net)
  • 승인 2014.08.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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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하루 한 개의 사과는 의사를 멀어지게 한다(An apple a day keeps the doctor away)’는 속담이 있다. 사과가 그만큼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金), 저녁에 먹는 사과는 독(毒)’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런 격언(?)이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정설로 굳어 있는 것 같다.

사과를 아침에 먹는 것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아침에 먹으면 껍질에 풍부한 펙틴 같은 식이섬유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배변활동이 좋아지고 폴리페놀이나 퀘르세틴 같은 성분들은 항산화작용을 한다. 또 풍부한 당분과 유기산은 에너지원이 돼 피로를 풀고 생활을 활기차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과를 밤(특히 수면 직전 공복)에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유력한 이유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맛을 내는 유기산이다. 사과의 유기산은 pH 3~4 정도로 약산성을 띤다. 빈속에 먹으면 속이 쓰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의 산도는 pH2로 강산성이기 때문에 사과 산도는 위산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과의 산도는 일반적인 적포도주 산도와 비슷하다. 포도주의 pH는 2.8~4.5 정도다. 수면 직전 한 잔의 포도주를 마셨다고 속이 쓰리지 않듯이 빈속에 사과를 먹었다고 속이 쓰리는 일도 없다. 심각한 위궤양이 아니라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식이섬유를 들고 있다. 사과의 식이섬유가 자는 동안 장내에 머물면서 장운동을 촉진하고 변의를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과 속 펙틴 같은 수용성식이섬유는 물에 겔처럼 풀려 장벽을 보호한다. 불용성식이섬유 역시 장을 요동치게 하는 일 없이 다음 날 아침 쾌변에 도움을 줄 뿐이다. 배변에 도움을 받고자 하면 아침보다는 오히려 수면 직전에 먹는 것이 백배 낫다.

또 다른 이유는 사과의 당분이다. 사과의 당분은 과당이나 포도당 같은 단순당으로 흡수가 잘 된다. 그래서 밤에 혈당을 높이고 소모되지 않는 경우 체지방으로 쌓일 것이라는 걱정이다. 하지만 껍질의 펙틴과 퀘르세틴이 당분흡수를 조절해 혈당을 서서히 오르게 하고 혈액 내 혈당도 떨어뜨린다.

여성의 경우 특히 사과를 수면 직전에 먹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최근 산부인과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산부인과 기록(Archives of Gynecology and Obstetrics)’에 사과가 여성의 성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바로 ‘플로리진’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하루 한 개 이상 사과를 먹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성기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사과를 밤에 먹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과에 들어있는 비타민C와 미네랄, 항산화성분이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서다. 특히 비타민C와 비타민6, 칼륨은 혈압을 낮추고 호흡을 편하게 해 준다. 또 세로토닌을 분비해 마음을 편안하게 진정시켜 준다. 사과는 수면제효과도 있다.
 

앞으로 밤에 먹는 사과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사과는 하루 중 언제 어느 때나 먹어도 건강에 이롭다. 아침에 먹는 사과도 금이고 저녁에 먹는 사과도 금이다. 껍질째 먹는 사과는 언제나 당신에게 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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