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등 온혈동물 조종하는 톡소포자충
사람 등 온혈동물 조종하는 톡소포자충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2.12.28 14: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차들이 왔다 갔다 하는 차도 한 가운데 서 있었다.”
플레그르(J. Flegr)라는 체코 학자는 자신이 왜 그런 곳에 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는데 가끔씩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훗날 혈액검사 결과 ‘톡소포자충’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 뒤 그는 깨달았다.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이 자기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일반인이 이런 생각을 하면 “망상에 빠졌다”고 하겠지만 플레그르는 찰스대학 생물학과 교수였고 자신의 생각을 증명할만한 수단을 갖고 있었다.

톡소포자충은 사람이나 쥐와 같은 온혈동물에 들어와 감기 비슷한 증상을 일으키며 면역계에 의해 공격을 받을 즈음엔 뇌 등 여러 장기로 도망가 주머니를 만들고 그 안에 숨는다. 기회주의적 속성을 지닌 기생충인지라 숙주의 면역력이 약해지면 주머니 밖으로 나와 다시 증식을 하는데 주머니의 위치가 주로 눈이나 뇌 등인지라 망막염이나 뇌염 같은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킨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면역력이 약해지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주머니 속에 숨어있는 거다. 증식을 못하게 하는 약은 있지만 주머니 속의 톡소포자충을 죽이는 약은 아직까지 없으니 한번 걸리면 다 만성감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자들 중에는 주머니 속의 톡소포자충이 숙주의 행동을 조종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톡소포자충 감염쥐의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든지, 주의력집중장애처럼 부산하게 움직이는 경향을 보인다든지 하는 식의 관찰결과가 하나둘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절정은 톡소포자충에 걸린 쥐가 고양이 소변냄새에 공포감을 덜 갖는다는 것. 소위 치명적 유혹으로 알려진 이 논문은 톡소포자충을 단숨에 인기기생충으로 만들었고 톡소포자충의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 톡소포자충의 종숙주가 고양이인지라 이 현상은 기생충이 종숙주에 가기 위해 숙주를 조종한다는 좋은 본보기였다.

그래도 학자들 간에 암묵적 전제가 있긴 했다. 쥐처럼 단순한 동물은 그럴 수 있지만 사람은 절대 톡소포자충에 조종당하지 않는다고. 플레그르는 바로 이 점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들의 혈액을 채취해 정신분열증환자들이 일반인에 비해 톡소포자충에 훨씬 더 많이 걸려 있음을 확인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서도 톡소포자충환자의 비율이 높았다. 교통사고환자에서 톡소포자충의 비율이 더 높다는 걸 알았을 때 플레그르는 환성을 질렀으리라. 플레그르의 논문을 무시하던 다른 학자들도 점차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다.

지금까지 밝혀진 결과를 보면 톡소포자충에 걸린 남자들은 질투심이 많고 내향적이며 쉽게 지루해한다. 또 활동성이 줄어들고 감정적으로 불안하며 화를 잘 내고 자신을 낮게 평가하며 사회적 규칙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단다. 반면 감염된 여자들은 더 지적이고 참여적이며 다른 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회적 규칙을 중시하는 식으로 보다 좋은 모습을 보이니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최근 플레그르는 더 엽기적인 실험을 했다. 고양이, 말, 호랑이, 하이에나, 개 등의 소변을 받아서 냄새를 맡게 한 것. 다른 소변의 선호도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남자감염자들은 톡소포자충에 안 걸린 남자보다 고양이 소변냄새를 더 좋아했다. 반면 여자 감염자들은 비감염자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톡소포자충은 여자를 조종하진 못하지만 남자는 쉽게 조종한다고. 설마 고양이에게 잘 잡혀먹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