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학이 필요한 까닭
기생충학이 필요한 까닭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1.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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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비만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흔히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BMI)로 비만 여부를 판정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이 비율이 25 이상이면 비만, 30 이상이면 고도비만이라고 한다. 
 
지난 12년간 우리나라의 비만비율은 급격히 늘었다. 특히 남성비만율은 1998년 25.1%에서 2010년 36.3%로 11.2% 늘어났고 고도비만도 4.2%나 됐단다. 살찌는 게 고민인 이유는 그 자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지하철 좌석에 앉을 때 괜히 미안해지고 하루 종일 굶다가 햄버거라도 하나 먹을라치면 남들로부터 “저것 봐, 저러니까 살찌지”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외관상의 문제 말고도 살찌는 게 안 좋은 이유는 그로 인해 다른 질병들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대표적인 2형당뇨병은 인슐린에 대해 저항성이 생겨 혈당이 높아지는 병으로 비만인 경우 흔히 발생한다. 이밖에도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든지 동맥경화증이나 지방간 같은 병도 모두 비만과 연관이 있다. 다라서 비만은 단순히 외관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일 수 있겠다.
 
한때 기생충이 비만을 막아준다는 헛소문이 퍼진 적이 있었다. 유명 오페라 가수인 마리오 칼라스가 일부러 기생충에 걸려 살을 많이 뺐다는 얘기도 있었고 긴 촌충을 이용한 다이어트방법이 타이라쇼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것들은 물론 다 근거 없는 얘기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기생충을 몸에 갖고 있다 해도 그 기생충들이 먹는 건 밥 한 숟가락 분량도 안 될 테니까. 5미터가 넘는 광절열두조충도 길이만 길 뿐 두께는 종이짝처럼 얇아 실제 먹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불가능할지라도 비만에 수반되는 질환에 기생충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네이처 메디신’이라는 유명학술지에 실린 이 연구의 골자는 이렇다. 쥐한테 지방질이 많은 음식을 주면 쥐가 뚱뚱해지고 사람처럼 인슐린에 대해 저항성이 생긴다. 하지만 미리 기생충에 감염시켜 놓으면 쥐의 비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인슐린저항성이 생기지 않았다. 왜?
 
비만의 특징 중 하나가 지방조직에 염증이 생기는 것인데 기생충에서 나오는 LNFPⅢ라는 이름의 글리칸은 이 염증반응을 없애주고 인슐린 감수성도 증폭시켜 준단다. 뿐만 아니라 그 글리칸은 간에서 지방이 만들어지는 것도 억제해 지방간을 줄인다고도 하니 앞으로는 기생충에서 나오는 이 글리칸이 각종 대사질환의 치료제가 될 수도 있겠다.
 
신기한 점은 이 글리칸이 출산 직후 모유에서도 발견되며 태아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물질이 분비된다는 거다. 태아도 엄연한 이물질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면 엄마의 면역을 억제할 수밖에 없고 모유 역시 태아가 보기엔 이물질인지라 모유도 면역억제성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LNFPⅢ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 기생충은 만손주혈흡충이라는 기생충으로 간경화를 일으켜 해마다 20만명의 사람을 죽일 정도로 악명이 높다. 이 기생충이 글리칸을 분비하는 이유도 사람의 면역으로부터 숨어 자신의 영달을 꾀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그게 또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을 예방할 있고 특히 지방간을 예방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기생충이 다 없어졌다는데 기생충연구를 왜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기생충학은 기생충을 박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생충을 이용해 인류에게 득이 되는 연구를 하는 분야이며 위 연구는 왜 기생충학이 필요한지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연구가 많이 나와 기생충학의 이미지를 개선해주면 좋겠다. 나도 노력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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