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버리면 의사가 어떻게 진단하냐고요?
기생충 버리면 의사가 어떻게 진단하냐고요?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2.08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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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가 아파 오셨죠?”
의사의 질문에 환자는 손등에 조그만 혹이 생겨서 왔노라고 대답한다.
“피부암이 아닐까 걱정이 돼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어디, 그 혹 좀 봅시다.”
의사의 말에 환자가 말한다.
“벌써 떼서 버렸지요.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그냥 둘 수가 없더라고요.”
 
아마도 의사들은 이럴 때 난감한 표정을 지을 거다. 그 혹을 봐야 환자에게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 텐데 혹이 없으면 그게 뭔지 알고 말하겠는가? 혹을 관찰한 다음 필요하다면 조직검사도 하면서 혹의 정체를 알아내는 게 의사의 할 일일진대 “인터넷 찾아보니까 지방종 같던데요”라는 환자의 말만 믿고 지방종이라고 진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경우 의사가 할 수 있는 말은 “다음에 또 혹이 생기면 그때 오세요”가 고작이지 않을까? 물론 이건 실제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과가 정말로 있다. 다음 사례를 보자.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여성 한 분이 내게 메일을 보냈다. 남편과 아이들 둘 모두에게서 광절열두조충의 조각이 발견된다는 것. 광절열두조충(이하 광절)은 길이가 몇 미터쯤 되는 긴 기생충으로 일정기간마다 몸의 일부를 끊어 밖으로 내보내는 특징이 있다. 평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 환자들이 광절의 존재를 알아채는 건 대부분 광절의 조각을 발견할 때다. 이 여성의 가족들은 광절에 걸렸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거였다.
 
하지만 조각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광절은 아니다. 돼지 간을 먹고 걸리는 아시아조충이나 육회를 먹어 감염되는 민촌충도 좀 짧기는 하지만 몸의 일부를 내보내는 것은 동일하고 대변을 뒤지다보면 콩나물조각이나 나물조각 등 기생충처럼 보이는 물건들도 꽤 많이 있다. 중요한 건 기생충학자가 보고 진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 혹시 벌레조각을 가지고 있냐고 묻자 여성분은 이렇게 대답한다.
 
“버렸는데요.”
사진이라도 찍어놓은 게 있느냐고 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사진도 없는데요.”
자신이 보기엔 내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광절의 사진과 똑같다면서 광절이 확실하다고 말하는 그 여성분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비단 이 여인뿐이 아니다. 보관해 놓은 벌레가 있느냐고 물으면 많은 수가 “버렸다”고 하고 왜 버렸냐고 하면 “아니 그 징그러운 걸 가지고 있으란 말이요?”라고 되레 화를 낸다. 유독 기생충 분야에서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기생충의 단서는 대부분 대변을 통해 얻어지며 외형상 징그러워 오래 보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기생충을 버리면 진단을 할 수 없고 진단을 못하면 약을 줄 수가 없다.
 
징그럽더라도 의사나 기생충학자가 볼 때까지 보관해주기 바라며 이왕이면 수돗물에 담가 보관하는 것이 벌레가 마르지 않아 진단이 더 용이하다(의사를 바로 찾아갈 것이 아니라면 식염수가 좋다).
 
갑자기 내게 전화를 걸었던 선배의사 생각이 난다. 환자 눈에서 동양안충으로 생각되는 벌레가 15마리나 나왔다는 그 선배에게 “15마리면 우리나라 기록인데 논문으로 쓰는 게 좋겠네요. 제가 가지러 갈게요”라고 하자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어떡하지? 버렸는데.” 의사가 버릴 정도니 일반인이야 오죽할까.
 

대변에서 나온 광절열두조충의 조각. 보통 20~50센티 정도 된다.

조금 짧은 광절열두조충 조각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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