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의 기생충 vs 송어의 기생충
청어의 기생충 vs 송어의 기생충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3.08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H 로렌스가 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실비아 크리스텔, 아니 코니라는 여인이 산지기 멜러즈와 바람을 피우는 얘기다. 코니의 남편 클리퍼드가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불구가 되는 바람에 코니는 ‘반처녀’, 즉 결혼은 했지만 부부관계가 없는 처녀로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그걸 안타깝게 여긴 코니의 아버지는 사위한테 이런 말을 한다.
 
“그 애는 야위어가고 있네. 앙상해지고 말야. 그 애답지가 않아. 그 앤 청어처럼 삐쭉하니 깡총한 계집애가 아냐. 살찌고 팔팔한 스코틀랜드 송어라고 할 수 있지.”
 
즉 비쩍 마르고 성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게 청어라면 코니는 팔팔한 송어니 이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청어가 성에 관심이 없다면 진작 멸종이 됐을 텐데’ 하는 반문이 제기되지만 저자가 이미 죽은 지 오래니 그냥 넘어가고 여기서는 기생충을 중심으로 얘기해 보자.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청어는 소위 등푸른생선의 하나로 영어로는 ‘herring’이다. 북태평양 등 추운 물에서 사는 물고기인데 네덜란드에서는 청어가 국민식품이라 불릴 만큼 유명하다. 유럽에서 날생선을 먹는 드문 나라 중 하나가 바로 네덜란드인데 청어를 잡자마자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후추나 소금 또는 잘게 다진 양파를 뿌려 먹는다.
 
아쉽게도 청어에는 고래회충의 유충이 잔뜩 있어 사람 몸에 들어가면 크기 1센티 이상 되는 유충이 사람의 위를 파고들어 극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고래회충 유충은 대부분 내장에 살지만 숙주인 물고기가 죽고 나면 근육으로 기어 올라오는지라 아무리 내장을 제거한다 해도 일부는 사람이 섭취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네덜란드에선 고래회충 유충에 의해 복통을 겪은 이가 엄청나게 많았고 ‘herring disease’라는 질병명이 붙여질 정도였다.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알려지긴 했지만 청어 말고도 고래회충 유충은 모든 바다고기에 다 들어 있어 우리나라와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도 이 질환이 숱하게 보고됐다. 네덜란드가 고래회충 때문에 청어를 얼리도록 권장하면서 환자 수가 급감하긴 했지만 싱싱할수록 값이 더 나가는 우리나라에선 고래회충 유충이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송어에는 광절열두조충이 있다. 얼마 전 감염된 한 환자는 다른 바다회는 안먹고 송어회만 드시다가 결국 6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광절열두조충 한 마리를 배출하셨다. 고래회충과 달리 광절열두조충의 유충은 그 빈도가 극히 드물어 송어 내 감염률이 0.1% 이하일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송어회가 사랑받는 만큼 환자도 계속 나오고 있다.
 
고래회충 유충은 내시경으로 충체를 제거하면 되고 광절열두조충도 디스토마 약 한 알로 치료되지만 길이가 길이다 보니 환자에게 미치는 충격은 광절 쪽이 훨씬 더한 모양이다. 이번에 충체를 배출한 환자 분도 그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코니 아버지의 말을 조금 바꿔서 해본다.
 
“청어는 삐쭉하고 깡총해서 날로 먹어도 기껏해야 고래회충 유충에 걸리는 게 고작이지만 살찌고 팔팔한 것에 혹해 송어회를 먹어대다간 길이가 몇 미터나 되는 광절열두조충에 걸리기 십상이야.”
 
하지만 코니와 관계를 가진 산지기가 “세상에서 제일 근사”하다며 코니를 칭찬한 것처럼 송어회를 한번 먹고 나면 송어의 유혹에서 빠져나오는 게 쉽지 않다. 아무리 광절열두조충 얘기를 해도 환자가 꾸준히 나오는 건 송어회의 치명적인 맛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