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절대왕자 ‘회충’의 교훈
생존 절대왕자 ‘회충’의 교훈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3.15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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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는 자기새끼를 벼랑에서 떨어뜨린 후 살아남는 새끼만 키운다.’ 어린 시절 담임선생님이 해준 이 이야기는 수사자의 목을 뒤덮은 갈기와 더불어 사자에 대한 존경심을 품게 해주는 이유였다. 하지만 어릴 적 얘기들 중 거짓으로 드러나는 게 한둘이 아니듯 사자와 벼랑 이야기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사자가 새끼를 벼랑에 떨어뜨리는 건 다른 수사자가 잉태시킨 자식을 죽이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일 뿐 스파르타식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랜 시간 품어온 사자에 대한 존경심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겠지만 스파르타 교육이 존경받을 이유라면 회충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회충은 회충알을 먹어서 감염된다. 편충의 알이 장 속에서 부화해 맹장에 자리를 잡고 어른으로 자라는 데 비해 사람 몸에 들어간 회충알은 길고 긴 대장정을 통해 어른이 된다. 어린 녀석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싶은 회충의 여정을 한번 들여다보자.
 
회충의 알은 십이지장에서 부화한다. 알을 깨고 나온 유충은 크기도 작고 낯선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때 엄마회충이 ‘얘야,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다’라고 얘기해 준다면 훨씬 도움이 되겠지만 어린 회충에게 그런 말을 해줄 엄마는 다른 사람의 뱃속에 있다.
 
매사를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 상황에 처한 어린 회충은 의연하게 십이지장에 연결된 혈관에 몸을 싣는다. 수많은 적혈구를 만나고 자신을 적대시하는 백혈구들을 피해 가면서 회충은 드디어 간에 도달한다. 오랜 항해 끝에 육지를 만난 셈이지만 회충은 쉴 새도 없이 간에서 심장으로 연결된 혈관을 따라 오른쪽 심방에 간다.
 
많은 양의 혈액이 드나드는 심장에 있는 게 얼마나 무서울지 짐작이 가는가? 회충은 우리 몸을 돌고 온 혈액을 받아 폐로 보내는 오른쪽 심장의 혈류를 따라 폐로 이동한다. 허파꽈리를 통해 산소교환이 이뤄지는 폐에서 회충은 크기가 커지고 유아기를 지나 청소년기에 접어들게 된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혈류를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회충 스스로 움직여 장까지 가야 한다. 몸부림을 치며 기관지에 도달한 회충은 기도를 따라 점점 위로 올라가는데 몇 밀리에 불과한 회충이 기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은 스파이더맨도 감탄할 만큼 경이롭다. 많은 회충이 여기서 탈락하고 말지만 운 좋게 몇 마리는 기도의 끝에 도달한다. 기도에는 후두개라는 장벽이 있는데 후두개는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기도에 이물질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숨을 쉬기 위해 후두개가 열리는 순간을 회충 소년은 놓치지 않고 잽싸게 기도 뒤에 위치한 식도로 뛰어든다. 이때 회충은 기억한다. 식도와 위, 그리고 십이지장에 한번 와본 곳이라는 걸.
 
예전과 달리 회충은 묵묵히 아래로 내려가고 소장중간에 위치한 공장에 도달해 고단했던 여정을 마치고 어른이 될 준비를 한다. 그로부터 석 달 후 공장에는 어른이 된 싱싱한 회충 한 마리가 탄생한다.
 
100개의 회충알을 먹는다고 어른회충 100마리가 몸에 있는 게 아닌 이유는 이렇게 어른이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3주간의 대장정 때문이다.
 
회충이 왜 이 길고 힘든 여정을 되풀이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충이 산소를 필요로 해서 그렇다는 설도 있지만 증명된 바는 없다.
 


단정 짓기 조심스럽지만 회충이 ‘기생충의 왕’이 된 이유는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됐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릴 적 그 힘든 모험을 끝내고 어른이 된 탓에 회충은 우리 몸 내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자녀들을 곱게 기르는 것 같다. 산도 혼자 올라가 보고 모르는 곳도 혼자 찾아가게 하고 모르는 문제도 한번 끝까지 풀어보게 하는 등 스파르타식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우리 자식들이 ‘사람의 왕’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반문을 해본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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