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기능 ‘공감’ vs 불행의 씨앗 ‘동정’
치유의 기능 ‘공감’ vs 불행의 씨앗 ‘동정’
  • 장은영 한양대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승인 2014.10.12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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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누군가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치료방법이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신을 낙오자로 여기는 사람,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불시에 잃은 사람,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계속 일을 해야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 부모의 사랑이나 인간의 정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하소연하거나 원한을 풀어줄 곳을 찾아내지 못한 사람 등.

위의 처지에 있는 사람을 딱하게 여기고 동정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동정할 줄 아는 자신을 선한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온당할까?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이기에, 어떤 자격을 갖췄기에 누군가를 불쌍히 여겨도 되는 걸까?

 

심리학 중 상처나 고통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분야, 예를 들어 임상심리학이나 상담심리학의 영역에서는 ‘공감’이라는 반응을 중요하게 여긴다. 최근에는 이 표현보다 ‘감정이입적 이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근본취지는 유사하다. 즉 누군가의 아픔을 달래주려면, 또 그 아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우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심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감과 동정을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두 가지는 명백히 다른 반응이다. 게다가 기능도 판이하게 다르다. 공감이 누군가를 치유하는 기능을 한다면 동정은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원인으로는 동정심이 지닌 몇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다. 먼저 동정심은 자신과 타인의 위치를 가늠하고 우열을 가리는 과정을 거쳐 유발된다. 동정심의 바탕에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서열을 구분하는 습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또 공감이 상대방의 관점과 처지에 몰입한 것이라면 동정심은 나의 관점에 충실한 감정이다. 바라보는 대상은 타인이지만 본인의 관점이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경험하는 동정심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며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대방을 점점 견디기 어려워지진다. 결정적으로 동정심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결여될 수 있다는 점이다. 존중감이 결여되면 상대방을 타인의 호의에 의지하는 존재로 보게 되고 상대방에게 내재된 자유의지, 성장가능성, 자정능력 등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다만 여기서 오해의 여지를 줄이고자 두 가지 마음상태를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하나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동정심이다. 딱한 처지의 사람을 보고 어린아이가 ‘아이, 불쌍해’라고 느낄 때의 동정심은 누군가의 고통에 반응해 표출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동정심은 상대에 대한 공감과 타인을 향한 존중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성인도 느끼는 측은지심인데 이 역시 동정과는 다르다. 측은지심은 인간에 대한 존중을 포함하고 있으며 상대방을 열등한 존재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렵고 고통스런 처지에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동정하지 말자. 그 사람이 나를 비롯한 타인들의 호의에만 의지하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속단하지 말자. 행여 동정심이 울컥 차올랐어도 그 감정에 오래 머물지 말자. 그는 우리의 일시적이고 편리한 감정인 동정심이 아니라 공감과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를 동정하는 것보다 그의 관점을 취하고 입장을 이해하며 그의 선한 의지를 신뢰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그래도 누군가를 위하고 이해하며 배려했다면 당신의 마음에 ‘동정심’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말라. 당신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공감하고 존중했기 때문이다.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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