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진료금지’가 왜 황당한 주장인가
‘음주진료금지’가 왜 황당한 주장인가
  • 조창연 헬스경향 편집국장 (desk@k-health.com)
  • 승인 2014.12.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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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의사사회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아직 해당의사의 과실여부가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가수 신해철 씨가 장협착수술을 받고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인천의 한 병원에서 전공의 1년차 의사가 술 마신 상태로 세 살 난 어린이의 턱을 봉합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참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라며 분노하고 있으며 많은 의사들은 당황과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전공의에 대해 병원은 파면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복지부는 의료법 위반행위를 검토해 면허정지처분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창연 헬스경향 편집국장

이 와중에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의원이 의사의 음주수술금지법을 발의했다. 그가 대표 발의한 의료법개정안에는 마약류 복용이나 투약, 흡입 및 음주 후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법안을 발의한 이유는 환자생명과 직결된 의사의 음주진료를 의사윤리에만 맡기면 이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이 ‘지나치고 과중한 전공의 파면 및 면허정지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공의 개인에 대한 지나치게 과도한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들의 성명서 일부다. “해당전공의 파면을 주장하기 전에 저수가를 강요하고 의료전달체계 및 응급의료체계를 왜곡시키는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이 먼저 파기돼야 한다.(중략) 음주진료금지라는 황당한 법안이나 만들고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본회의장에서 회의는 뒷전이고 잠을 자거나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는 국회의원들이 먼저 해임돼야 한다.”

성명서를 보면서 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이익단체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맞는 얘기다. 잘못된 의료정책은 제대로 만들어야 하고 본회의장에서 야한 사진이나 보는 국회의원들은 퇴출돼야 한다. 당연히.

하지만 이 사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음주’라는 사실이다. 큰 수술이 됐든 간단한 시술이 됐든 술을 마시고 한 의료행위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또 이 법안의 핵심은 ‘술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술 마시고 ‘수술하지 말라’는 것이다. 음주진료금지가 어째서 황당한 주장인가. 그럼 술 마시고 수술해도 된다는 말인가. 당연한 것을 법제화한다고 이렇게 반발하는 것이 타당한가. 게다가 왜 이 시점에서 저수가문제와 잘못된 의료정책이 나와야 하는가. 그러니 혼란을 틈타 이익을 취하려 하고 문제를 왜곡시킨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 태도가 정상이 아닐까.

“의사도 진상환자, 술 취한 환자, 폭동 난동 부리는 환자들 진료거부할 권한 줘라. 쓰레기 같은 환자 천지다, 널렸다. 진료 거부할 권한 줘라!(중략) 음주수술하지 말라고? 그럼 우리도 음주환자 진료거부할 권한 줘라.” 한 의사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왜 이 법안이 필요한지 알 것이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한 의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당연히 의사도 술 마실 수 있다.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현장에서 술 먹고 실수하는 것을 용납할 국민이 과연 있을까. 취재현장에서 만나는 의사들을 보면 정말 좋은 분들이 많다. 충분히 사회적인 존경을 받을 만큼 인격적으로도 학문적으로 완성된 분들도 있고 참으로 열심히 사는 분들도 많다. 정작 이 분들은 법안에 관심도 없다. 당연한 일이니까. 법으로 만들어지든 아니든 해야 할 일이니까. 오히려 이런 법안을 만들게 한 자신들이 부끄럽다고 한다. 왜 우리 사회는 항상 목소리가 커야 이길 수 있는 걸까.

<조창연 헬스경향편집국장 desk@k-heal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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