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아와 엄친딸에 비교되는 사회
엄친아와 엄친딸에 비교되는 사회
  • 장은영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승인 2014.12.19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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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데 넌 잘하는 게 뭐니?’ ‘옆집의 OO는 이번에 전교 1등 했다더라.’ ‘내 친구 딸 OO 알지? 이번에 대기업 들어갔다더라. 걘 참 복도 많지.’ ‘나 아는 OO는 호텔에서 결혼식 하는데 왜 난 못해?’ ‘똑바로 일 좀 못하나? 동기 OO랑 차이가 나도 너무 나네’ ‘내 친구 알지? 걔 남편 이번에 승진했대.’ ‘너네 아파트 몇 평이니? OO는 이번에 강남평수 넓은 데로 옮겨간다네.’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을 옮긴 것이다.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공통요소를 아마도 이미 눈치챘으리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누군가와 비교되는 상황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바람에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떨까? 열 받거나 짜증나고 속상하다. 자신이 한심하고 못난 존재로 느껴진다.

그나마 긍정적인 결과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그 사람처럼 되겠다고 노력하는 정도가 아닐까. 우리가 ‘약이 바짝 올라’ 무언가에 몰두할 때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사람들에 의해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비교적 익숙한 것 같다. 다재다능하고 무엇 하나 뒤지는 것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엄친아’와 ‘엄친딸’이 있다.

이 표현에는 접해본 적도 없는, 실존하는 인물인지도 잘 모르는 지극히 우월한 대상과의 반복된 비교에 노출된 우리들의 자조와 냉소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인지 엄친아나 엄친딸에 대해 자세한 설명도 필요 없이 ‘엄마 친구 아들’ 또는 ‘엄마 친구 딸’을 줄인 말이라고만 알려주면 우리는 금방 그 의미나 연합된 감정까지 순식간에 이해하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이미 10여년이나 지난 자료지만 과거 필자가 측정해 본 바에 의하면 미국 대학생들도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에 의해 꽤 잘난 또래와 비교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다만 정도가 달랐다. 0점부터 6점까지로 그 정도를 응답하도록 했을 때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평균 3.75점으로 중간점(3점)보다 높았고 미국 대학생들은 평균 2.76으로 중간점보다 낮았다. 두 문화권의 평균값 차이는 1점에 가까웠고 이는 연구자들이 의미 있게 볼만한 수준이다.

이 연구는 문제점이나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적어도 다른 문화권이나 사회에 속한 사람들에 비해 누군가와 비교당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더 빈번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물론 어떤 점에서지 본받을만한 사람을 모델로 삼아 노력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을 수 있다.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치며 피폐해진 한국사회가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을 단기간에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비교가 유발하는 긍정적 측면이 부분적으로나마 숨겨져 있다. 그 긍정적이며 기능적이었던 가치는 우리 뇌리에 남아 자신이나 누군가를 채찍질하는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는 것 같다.

실제로 여러 심리학연구에 의해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이 도움이 되는 조건이 몇 가지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정말 잘 하고 싶은 영역에서 우수한 성취를 이룬 사람과 비교할 때, 그 사람이 성공하기 전의 모습이 자신과 유사할 때, 노력하면 유사해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비교할 사람을 자신이 선택했을 때 등이다.

예를 들어 자수성가한 사람이 과거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이나 성공이 자신에게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며 자신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비교는 긍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더 노력하고 몰두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우수한 만능천재와 비교당하는 것은 좌절감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킬 뿐 노력이나 성취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정해준 비교대상도 역시 마찬가지다. 내 눈 앞의 존재를 만능천재와 비교하기 전에 그가 뭘 잘 해내고 싶은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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