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의 최고 덕목은 ‘따뜻한 신뢰’
자녀교육의 최고 덕목은 ‘따뜻한 신뢰’
  • 강용혁 |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1.12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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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임금은 신뢰받고 난 뒤에 그 백성을 노고롭게 한다. 신뢰 없이 부리면 백성들은 자신을 학대한다고 여긴다.” 이 같은 공자의 혜안은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모·자식 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학습우울증으로 내원한 여학생. 고1 때 자퇴한 후 3년째 집 안에만 있다. 아이는 “머리가 항상 멍하다, 그냥 죽고 싶다, 이유는 없다”는 말만 하곤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중3 때까지 최상위권이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성적이 떨어졌다”면서 “우울증 약도 먹는데 나아지는 게 없다”며 답답해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에듀파파(Edupapa)’다. 바쁘다는 이유로 자녀교육에 무관심한 아버지들과 달리, 자녀를 열성적으로 가르치고 학원이나 교재 선택까지 챙긴다. 아이의 아버지 역시 외동딸을 어릴 때부터 직접 가르쳤다.

문제는 열정을 전하는 방법이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학력차별을 몸소 겪었고, 결국 만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래서 일찍부터 자녀교육을 서둘렀고, 자신이 극복했으니 자식도 할 수 있다며 무섭게 몰아붙였다.

아버지는 저녁마다 자신이 별도로 내준 숙제를 검사했다. 주로 아버지 앞에서 책을 통째로 암송하는 것이다. 버벅대면 얼차려로 무섭게 혼냈다. 중학교 때까지는 이런 선행학습 덕에 성적도 좋았고 겉으론 아이도 곧잘 따라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한 훈육관 노릇만 했을 뿐 따뜻하고 세심한 보살핌은 간과했다. 어머니 역시 말리질 않았다. 결국 아이는 “어디에도 내 편은 없다. 부모님은 그저 나를 양육해주고, 나도 나중에 돈을 벌면 되갚아야 하는 그런 관계”라고 싸늘한 투로 말했다. 부모 생각과는 달리 아이 입장에선 그저 무섭게 양육당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과제를 잘하면 그나마 인정해주는 것이 전부였다”면서 “친척들이 모이면 항상 영어책 암송을 장기자랑처럼 해야 했는데 아버지의 미소를 보는 건 이럴 때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서 그건 더 이상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만족을 위한 것이라 느껴졌다.

무서운 군주 앞에서 어린 백성은 순응할 수밖에 없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부모님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최면을 건다. 자기표현을 아끼며 최대한 참고 보는 성정인 태음인이라 반항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다. 그러나 자아가 강해지면서 극도의 거부감과 내적 분노는 커져갔다.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적 저항이 우울증으로 발전했다. 그저 무서운 아버지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공부였기에 단 한 번의 실패에도 맥없이 무너졌고 다시 일어설 이유를 찾지 못했다. 부모는 따뜻함을 주지 못했고, 자식은 신뢰하지 못했다. 부모로선 억울하고 가슴 아프겠지만, 따뜻함이 없는 열성적 교육은 아이에겐 ‘학대’일 뿐이다.

10㎏이나 늘어난 체중을 줄이고 울증을 푸는 치료를 했다. 내면의 분노를 억압하는 대신 스스로의 감정을 직시하는 상담치료를 병행했다. 얼마 뒤 다행히도 아이는 스스로 검정고시를 보겠다며 학원을 등록했다.

자녀교육에서 최후까지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따뜻한 신뢰다. 무수한 실패와 좌절을 극복할 용기의 자양분은 여기서 나온다. 선현들이 부모·자식 간에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친할 친(親)’자를 꼽은 뜻을 부모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강용혁 |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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