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그에게 맞추는 것이 ‘배려’
내가 아닌 그에게 맞추는 것이 ‘배려’
  • 강용혁 |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1.2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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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큰 사당에서 제사를 올리면서 절차 하나하나를 물었다. 그러자 혹자가 “누가 공자가 대단하다 했는가. 제사 법도조차 몰라 매사를 묻는데…”라며 비난했다. 이에 공자는 자신이 한 행동이 진정한 ‘예’(禮)라고만 답했다. 

살찌고 싶다며 내원한 30대 남성. 불면증과 식욕부진으로 마른 체형인데 6㎏이나 더 줄었다. 몇 년을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스리려 명상서적도 읽고 매일 방에 향을 피우고 참선도 했지만 허사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짜증이 늘었다.

소음인 사려과다(思慮過多) 증상이다. 머릿속에서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 몸까지 축나는 현상이다. 환자의 경우 결혼 문제였다. 2년 넘게 교제 중인 직장 후배에게 청혼했는데 확답을 주지 않는다. 애타는 마음에 이래저래 더 챙겨주고 배려했는데도 반응이 없어 미칠 지경이다.

소음인은 결론이 나기 전에는 한없이 망설이다가도, 결론이 나면 마음이 급해져 경주마처럼 홀로 뛰쳐나간다. 문제는 혼자 결정한 것뿐이고 상대가 어떤가를 돌아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때부터 나름대로 더 배려한다며 하는 소음인의 언행들이 상대 입장에선 오히려 넘치거나 채근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소음인은 배려를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빨리 많이 주는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배려란 내가 아닌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필요한 시점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또한 예다. 태음인이 잘하는 부분이고, 소음인에겐 어려운 덕목이다.

또 남성들은 처음엔 매력에 빠져 여성을 보기만 해도 좋다가, 교제 기간이 길어지면 마음이 변한다. 더욱이 결혼까지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상대의 단점을 따져 미리 자신의 방식대로 고쳐놓으려 한다.

이런 변화들이 여성에게 결혼 승낙을 주저하게 만든다. 여성 입장에선 ‘이젠 날 사랑하지 않나?’라며 결혼에 조급해하는 남성의 마음과 달리 애정이 식었다고 느낀다. 여성은 이성으로서의 호감 외에 자기 아이의 아버지 감이 될 만하다고 느끼고, 편안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남자라는 확신이 들어야 승낙한다. 그런데 남성이 조바심을 내면 여성은 더욱 불안해질 뿐이다.

환자에게 “인연이면 어떻게든 될 것이고, 아니면 같이 살다가도 헤어지니 조바심 내지 말라”고 조언했다. 뭘 줄까, 어떻게 할까 등 내 생각부터 미리 결정하지 말고, 상대를 관찰하는 게 우선이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게 진정한 배려임을 강조했다.

얼마 뒤 환자는 원하던 결혼에 성공해 부인과 함께 내원했다. 이번에는 “빨리 아이를 갖고 싶어 임신 잘되는 보약을 짓고 싶다”며 부인을 데려왔다. 부인의 의사를 물어보고 왔는가 묻자, 아차 싶은 표정으로 웃기만 한다.

임신 역시 남편 혼자 서두른다고 빨리 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에서 서두르면 불임요인이 없어도 자궁이 긴장돼 착상이 잘 안된다. 남편에게 ‘이 시간 이후로 아이에 관한 걸로 부담주지 않도록’ 당부했다.

천하의 공자가 제사법을 몰라 상대에게 물었을까. 자신의 원칙이 있지만 달리 생각할 수도 있는 상대방에게 하나하나 물어서 맞춰준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예이자 배려다.

자신이 하고픈 대로 하려다 상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강용혁 |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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