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겐 약이 나에겐 독 될 수도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2012. 02. 03 19:
남에겐 약이 나에겐 독 될 수도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2012. 02. 03 19:
  •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2.0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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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으로 돌아가라. 멀어지면 병이 생긴다. 여기서 자연은 꼭 숲에 기거하며 유기농만 먹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상의학에서는 타고난 마음결대로 사는 것이 중용의 미덕이자 자연이다. 그 네 가지 마음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상징화했다.

스트레스성 피부염으로 각각 내원한 태음인 여성과 소양인 남성. 좁쌀 크기의 발진들이 발갛게 올라와 가려워 피가 날 정도로 긁는다. 한 사람은 가슴·목·얼굴·두피에, 다른 사람은 옆구리에서 팔로 번져간다. 약을 먹으면 잠시 진정되다가 금방 재발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은 확연히 심해진다.

그런데 두 사람의 피부염은 모두 직업과 관련이 있었다. 피부염이 생긴 시기가 두 사람이 의류매장 매니저와 상점 재고관리자로 직장을 옮긴 뒤부터였다. 태음인 여성은 까다로운 고객 비위를 맞추며 매출실적이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한다고 했다. 반면 소양인 남성은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서 단순 반복되는 일에 지쳤다. 이런 스트레스로 체내에 불필요한 열독이 형성됐다. 나름의 방어기전으로 열독을 겉으로 배설하려는 과정에서 피부염이 생긴다.

태음인의 본성은 묵묵히 받아들이고 반복하는 일에 적합하다. 심리적 순발력이 가장 느린 대신 지구력이 좋다. 그래서 농부 이미지다. 소양인은 반대다. 순간 상대의 감정을 읽어 흥정하고 기분을 맞추는 상인에 적합하다. 변화나 재미가 없으면 견디질 못한다.

태음인이 변화가 심하고, 소양인이 단순 반복되는 일만 하면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다. 물론 태음인도 장사를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소양인은 즐기며 하는 일을 태음인은 긴장감 속에서 많은 애를 써야 한다. 이는 마치 오른손잡이 의사가 왼손으로 수술하는 식이다. 노력하면 극복할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몸과 마음이 버텨내느냐가 관건이다.

태음인에겐 건조해진 피부에 수분 공급을 빠르게 하는 한약을 처방했다. 아울러 고객응대는 가급적 단골만 직접 하고 나머지는 아래 직원이 맡도록 하라고 권했다. 순발력 대신 지구력으로 천천히 따라잡는다 생각하고, 초반에 과도한 목표를 잡아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반면, 소양인에겐 직접 열을 내리는 찬 성질의 한약을 처방했다. 너무 맵고 자극적인 음식과 술은 반드시 삼가도록 했다. 지루한 재고정리보다 돈이 오가는 계산대나 고객응대 쪽으로 보직을 바꿔보는 것도 권유했다. 퇴근 후 탁 트인 공간에서 여럿이 함께하는 운동을 하는 것도 추천했다.

2주 뒤 태음인 여성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소양인 남성은 큰 차도가 없었다. 알고 보니 문제는 흑마늘즙이었다. 환자는 ‘마늘즙은 맵지 않으니 문제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마늘, 고추, 후추, 생강 등은 대표적인 소음인 음식이다. 냉기가 많은 소음인의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지만 몸에 열이 많아 피부염까지 온 소양인에게 마늘은 독이다. 열을 내리는 약의 효과를 상쇄했던 셈이고, 마늘즙을 끊자 이전보다 훨씬 빨리 회복되었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 중심보다 서쪽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몸도 마음도 각자 타고난 치우침을 바르게 인식해 중심을 향해야 비로소 자연에 가까워진다. 남들이 좋다고 무작정 따라가다가는 어디서 길을 잃고 헤맬지 모르는 일이다.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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