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향한 분노는 나를 죽이는 화살
남을 향한 분노는 나를 죽이는 화살
  •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 승인 2012.02.17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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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의 화살은 맞더라도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 제2의 화살은 맞았더라도 제3의 화살은 피해야 한다. 불가에서 전해지는 가르침이다. 

어깨통증과 불면증으로 내원한 60대 남성. 사람이 많은 수영장에서 수영 도중 젊은 남성과 어깨를 서로 부딪쳤다. 곧장 병원부터 갔고, X-레이에 목 디스크가 확인됐다.

그러나 의사는 노인성일 뿐 사고로 생긴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부상을 증명하고 싶었던 환자의 기대가 꺾였다. 이번엔 한의원으로 와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지만 오히려 손 저림까지 생겼고, 이젠 한 달째 잠도 못 잔다”며 의사를 원망했다.
첫날은 어깨 근육을 푸는 가벼운 침 시술을 했다. 다음날 환자는 대뜸 “오늘 아침 기운이 없고 벌벌 떨렸는데, 어제 침을 맞아 기운이 빠진 것 아니냐”고 따진다. 환자는 수영장 관리인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할 생각에 더욱 잠을 설친 건 돌아보지 못했다.

수영장 사고는 제1의 화살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작은 불운이다.

그러나 화를 이기지 못해 어깨가 더 뭉치면서 목 디스크가 악화됐고 손 저림까지 나타난 건 제2의 화살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의사와 수영장 관리인에 대한 원망으로 불면증까지 왔다. 제2, 제3의 화살은 모두 자초한 것이다.

이런 인과관계를 차분히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불만을 남 탓, 세상 탓으로 돌리는 투사(投射) 때문이다.

물론 투사는 누구나 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다.

일례로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아기의 울음을 달래며 어른들은 애꿎은 돌이나 땅바닥을 탓한다. 그러면 아이는 그냥 달래는 것보다 더 쉽게 울음을 그친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까. 미디어와 인터넷은 집단적으로 투사가 이뤄지는 대표적 공간이다.

세상의 도리와 인륜을 말하지만, 그 목소리가 과장될수록 사실은 자신의 무거운 짐을 다른 대상에게 전가하려는 마음이 나타난다. 나보다 잘난 누군가를 공격하면, 현재 자신의 괴로움은 잠시 유보되기에 끊기 어려운 강한 중독성마저 있다.

투사는 인간의 내적 불만을 순간적으로 이겨내는 자기방어다. 그러나 굳은살처럼 마음에 박혀 삶 전반을 지배하면 곤란하다.

피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끊임없이 공격 대상을 찾아 방황하게 된다.

물론 도취되어 분노를 퍼붓는 동안은 희열을 느낀다. 그러나 한낱 배설에 불과하다.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 내뿜지만, 이내 사라지는 공허함에 마음은 늘 허기진다. 항상 문제의 본질을 회피함으로써,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돌아볼 이성의 힘은 줄어든다.

융은 투사를 멈추는 것을 궁극적 자기실현으로 보았다. 이제마 또한 세상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건 암도 오장육부의 병도 아닌 ‘투현질능(妬賢嫉能)’ 즉, 투사를 꼽았다.

환자에게 “사고는 올 한 해 액땜을 한 것”이라며 “목 디스크가 수술할 지경에 이르러 발견된 것보다 차라리 잘된 일 아니냐”고 위로하자 화를 누그러뜨렸다. 환자는 불면증도 함께 좋아졌다며 올 때마다 인사를 했다.

지금 내 손을 떠난 화살의 최종 목표는 남도 세상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외부로 향한 분노와 자기연민으로 순간 자아를 위로할 순 있지만, 결국엔 자신을 가장 피폐하게 만든다.

언제고 마음이 괴롭다면 자신이 쏜 제2, 제3의 화살에 맞은 것은 아닌가부터 돌아봐야 한다.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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