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삶에 답이 있다
공황장애, 삶에 답이 있다
  •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3.02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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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성장은 뼈와 근육이 자라는 것만이 아니다. 정신과 영혼의 힘이 함께 커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내면의 성장은 자신이 가장 ‘두려운’ 지점에서부터 일어나지만, 그 두려움을 회피하고 피터팬으로 살려는 ‘어른 아이’도 많다.

기(氣)수련 부작용이라며 내원한 20대 남성. 갑자기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심장박동도 빨라져 이유 모를 불안감에 시달린다. 3~4년 전부터 이런 증상이 조금씩 있었지만, 최근 부쩍 심해졌다. 머리도 띵하고 정수리에 뜨끈뜨끈 열이 난다. 환자는 “한달 뒤 중요한 시험인데 집중할 수가 없다”면서 “기수련을 했는데 주화입마 증상인가”라고 묻는다. 주화입마(走火入魔)는 호흡수련을 잘못해 머리쪽으로만 기운이 몰려 생긴 부작용이다. 그러나 평소 호흡법을 확인하니 별 문제는 없었다.

환자의 증상은 공황장애다.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으로 갑자기 온몸의 신경계가 과도하게 반응한다. 수년째 고시공부를 해오던 중 독서실에서 처음 나타났고, 시험을 한달 앞두고 부쩍 심해진 점이 실마리다.

상담결과 피터팬 신드롬에 의한 무의식적 두려움이다. 몸은 이미 성인이지만, 마음은 독립과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무의식은 잘 알고 있다. 시험공부를 이유로 1년씩 유예할 수 있었던 독립을 더 이상 회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이다.

고시는 정작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지금껏 뒷바라지한 형의 기대가 주입됐다. 자신에게는 버겁지만 형의 희생과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또 소음인인 환자의 자긍심도 작용했다. 즉, ‘대학까지 나왔는데, 내 수준에 공무원 정도는 돼야지’라는 마음이다. 또 공부하는 동안에는 모든 책임과 독립이 유예되기에 수 년째 진전 없이 매달려왔다. 여기에 지긋지긋한 공부에서 벗어나고 싶은 무의식적인 소망이 더해져 파열음을 낸 것이다.

처음엔 “시험은 내가 원하던 것”이라며 완강했다. 스스로도 착각한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 끊임없이 자신을 세뇌시켜 만든 환상이다. 상담을 반복할수록 형의 바람이 투영된 것임을 서서히 이해했다.

고등학교만 들어가도 독립시키려는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는 자녀를 과보호해 피터팬을 양산한다. 졸업한 지 5년 후에도 청년무업자(靑年無業者) 인구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과잉복지로 취업이 늦은 남유럽 국가들보다도 높다.

‘공부한다’, ‘고시준비 중이다’라고 말하면 명분이 좋다. 비인기 직종에 취업하느니 차라리 더 체면이 선다고 여긴다. 여기에 다른 건 몰라도 교육비라면 아까워하지 않는 부모들의 부채의식까지 더해진다. 결국, 오랜 기간 편입과 휴학을 반복하며 상아탑 안에서만 머무는 피터팬들이 늘어난다.

단순히 실업과 고용, 경제적 독립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의존적 태도는 사회진출에 대한 두려움을 과도하게 증폭시켜 몸까지 병들게 만든다. 다행히 환자는 “이번 시험을 마지막으로 형에게 솔직히 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비록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이후 공황장애는 빠르게 호전됐다.

흔히 공황장애는 이유없이 나타나는 병이라 말한다.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못 찾은 것뿐이다. 못 찾기보다 두려워서 스스로 회피하는 것이다. 이를 몸에서만 찾으려니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과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면 분명히 원인은 존재한다.

이제마는 홀로 깨어 자신을 돌아보는 독행(獨行)을 어떤 공부보다 중히 여겼다. 내면의 두려움과 마주할 용기야말로 뼈와 근육에 진정한 성장의 힘을 부여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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