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때로는 차선이 약
우울증, 때로는 차선이 약
  •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3.09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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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고, 뼈를 내주고 상대 맥(숨통)을 끊는다.’ 검도 이론의 하나다. ‘팔 한쪽을 내주고 머리를 취한다’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능하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또 상대가 하수라면 털끝 하나 내주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마주한 상대가 결코 만만찮은 고수라면, 팔 한쪽 내줄 각오 없이는 자칫 모든 걸 잃게 된다. 인생에서 마주한 어려운 고비도 마찬가지다.

만성두통과 우울증으로 내원한 전업주부. 칭얼대는 두 아이를 혼자 데리고 힘겨운 얼굴로 내원했다. 우울증 치료약을 2년째 먹는데, 최근에는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을 동반한 두통까지 생겼다. 남편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시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은 야근을 이유로 조금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점점 주말부부처럼 지내다 이젠 아예 집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생활비는 보내주지만 별거나 마찬가지다.

외도를 의심하며 따지고 들수록 남편은 더 거칠게 나왔다. 이후 우울증에 빠졌고, 어린 두 아이를 심하게 혼내는 일도 잦아졌다.

“그냥 머리가 아프다. 우울하다”며 눈물만 짓는 환자에게 상처를 준 건 분명 남편이다.

그러나 상처받았다고 다 우울증에 빠지는 건 아니다. 남편 원망에 스스로의 마음조차 돌아보지 않은 원인도 크다. 환자의 우울증은 뜨거운 감자다.

삼키자니 맛있지만 너무 뜨겁고, 뜨겁다고 뱉자니 너무 아깝다. 입천장을 다 데도록 입안에 넣고 버티는 중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 자식에게조차 무관심한 남편, 그저 허울뿐인 아내 취급을 삼키기 쉽지 않다.

반면 뱉어내자니 당장 홀로서기가 걱정이다. 양육권도 문제다. 게다가 환자는 지금껏 참고 살아온 데 대한 보상심리도 컸다. 환자는 “시아버지 시집살이까지도 참아왔는데 그게 억울해서도 못 헤어진다”고 말했다. 내심 시아버지의 재산에도 미련이 남는다.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시간만 끌어온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남편이 마음을 잡고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지니고 있다. 뜨거운 감자를 입안에만 넣고 있으니 머리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린다.

말로 잘 설득하면 남편이 돌아올 가능성은 있는가라고 물었다. 환자도 알고 있다. 문득, 환자는 “이혼할까요”라고 묻는다. 그러나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가정법원 판사도 대신해 줄 순 없다. 의사는 그저 모호하게만 여기던 환자 자신의 속마음을 읽어내 보여줄 뿐이다. 각각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가르쳐줄 순 있다. 하지만 가혹한 현실 앞으로 등까지 떠밀어줄 순 없다.

얼마 뒤 환자는 모든 걸 삼키기로 결정했다. 남편이 들어오든 말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사랑받는 아내는 포기하고, 대신 아이들은 지금처럼 자신이 양육하겠다는 선택이다.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선택일 뿐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무엇이 더 소중한지, 무엇이 조금 덜한 상처인지 판단할 뿐이다.

그렇게 마음을 단호히 결정한 뒤 근육 긴장을 풀어주는 한약을 복용한 결과 이내 메스꺼움은 사라졌다. 두통도 진통제 없이 지낼 정도로 호전됐다. 남편이 되돌아온 건 아니다. 주변 상황이 변한 것도 없다. 환자의 마음이 달라졌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흐린 날은 있다. 항상 최상의 길만 갈 순 없다. 때로는 차선이 최선이다. 한쪽 팔을 잘라내는 것이 더 작은 고통이라면, 기꺼이 그걸 선택하는 것도 큰 용기다. 그래야 훗날 이 고비를 되돌아볼 때 후회와 우울이 아니라 영광의 상처로 기록될 것이다.

늘 최상이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차선의 선택으로 삶의 끝은 피할 수 있어 행복일 것이다. 그래야 ‘살아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겠는가.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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