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갈등은 옛말…요즘 유행은 ‘장서갈등’
고부갈등은 옛말…요즘 유행은 ‘장서갈등’
  •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4.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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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자기 밭은 놓아두고 남의 밭 김만 매려 한다. 남에게 책임 추궁은 무겁게 하고 자기 책임은 가볍게 하려 한다.” 맹자의 이 말처럼 사상의학에선 “자기는 변하지 않고 남을 바꾸려다 보니 갈등을 일으키고 병이 생긴다”고 가르친다. 

남편 보약을 위해 내원한 30대 신혼 부부. 아내는 대뜸 “인터넷 중독도 한약으로 고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남편은 회식이나 야근을 핑계로 점점 겉돌고, 집에서도 혼자 인터넷만 한다. 최근에는 안 마시던 술에 만취해 외박까지 했다. 아내는 “아이도 빨리 갖고 싶은데 부부관계 한 지 몇 달은 된 것 같다”며 “왜 나랑 결혼한 건지 모르겠다”고 울먹인다.

언뜻 보면 모든 게 남편 잘못이다. 그러나 인터넷 중독이나 음주는 일종의 도피다. 남편 비난보다 무엇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지부터 찾아야 한다. 남편은 조심스레 장모님 이야기를 꺼낸다. 남편은 “가사를 도와주러 자주 집에 오시는데 간섭이 지나치다”며 “음식이나 작은 물건 하나도 내 집에서 내 맘대로 못한다”고 말한다. 또 “장모님은 걸핏하면 ‘인물이나 학벌도 변변찮은 조카딸은 지금 의사랑 결혼해서 잘 산다’는 말을 꺼낸다”면서 자존심 상했던 일을 떠올린다.

반면 아내는 “엄마가 악의 없이 하는 말인데 남편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남편의 불평을 일축한다. 아내에게 소음인 성정을 설명했다. 소음인은 자존심 상하는 게 죽기보다 싫다. 또 가구 배치 하나도 자기가 구상한 것을 누군가 바꾸려 들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장모가 사사건건 개입한다면 감옥이나 다를 바 없다. 소음인은 인간관계를 ‘내편’과 ‘내편 아닌 사람’ 둘로 분명히 구분한다. 가장 확실한 내편이어야 할 아내가 내편이 아니다 싶으니 밖으로 겉돌고 부부관계도 피하게 된다. 남편은 “부부싸움을 해도 모든 내용이 장모님 귀에 들어가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며 울컥한다.

요즘은 고부갈등 대신 장모·사위 즉 ‘장서갈등’이 더 흔하다. 젊은 부부의 이혼사유로 여성 측의 ‘시댁갈등’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남성 측의 ‘처가갈등’의 순위는 가장 높다. 대가족 시대엔 시가에 며느리가 편입되지만, 핵가족 시대엔 처가에 사위가 편입된다. 육아나 가사 도움을 이유로 아내가 친정에 밀착할수록 남편은 더욱 고립된다. 겉으론 핵가족이지만 실제 내용은 자칫 데릴사위 구조와 비슷한 ‘신 모계사회’가 연출된다.

며느리가 시댁 가풍에 맞추라는 것이 고부갈등이라면, 사위가 처가 입맛에 맞추라는 것이 장서갈등의 본질이다. 즉, 사위 한 명만 기존 가치관을 모조리 바꾸면 딸과 처가식구들은 기존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서로 다른 두 남녀가 절충하기보다 ‘나는 살던 대로 살 테니 네가 우리 방식대로 바꿔라’는 것이 갈등의 본질이다. 30년 넘게 형성된 인격체를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이다. 여기에 처가의 딸에 대한 집착이나, 딸의 친정 의존성이 강할수록 갈등은 심해진다.

나이 든 장모보다 아내의 태도 변화와 중재 역할이 가장 필요하다. 결국 ‘시집가더니 제 남편만 위한다’며 친정 엄마가 섭섭해할 정도로 서로 ‘젖떼기’가 돼야 부부 중심의 가정이 만들어진다. 남편 역시 처가 도움은 받으면서 간섭은 귀찮다는 식의 모순된 태도는 버려야 한다. 마음고생으로 체중까지 줄었던 남편은 이후 아내가 챙겨주는 보약과 태도변화 덕분에 보기 좋게 살이 올랐다.

양가 어른들 역시 출가한 자식문제에 지나친 개입과 집착을 자기희생이라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남의 밭 김만 매려 하듯 사위와 며느리부터 뜯어고치려 들면 자식 부부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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