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마루타’로 삼지 말고 모르는 것은 물어야
자신을 ‘마루타’로 삼지 말고 모르는 것은 물어야
  • 강용혁 분당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5.03 20: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앎이다. 공자가 내린 ‘앎(知)’의 정의다. 지식의 양보다 자신의 앎과 모름의 경계를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화병 치료 중인 ㄱ씨. 주말에 등산을 갔다가 넘어져 손목을 접질렀다. 일주일이 지나도 잘 낫지 않는다며 침치료를 원한다. 그런데 환자의 손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동전 넓이에 사혈로 인한 수십 바늘의 멍 자국들이 선명했다.

환자는 “가족들이 어디 아프면 부항을 내가 직접 다 해준다”며 “만져서 제일 아픈 곳에 해주면 웬만한 통증은 다 낫는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나 환자가 사혈한 곳은 맥을 짚는 부위로, 손으로 가는 가장 큰 동맥이 지나간다. 사혈 침이 조금만 깊이 들어가 혈관 벽에 상처를 냈다면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그야말로 위험한 자해가 될 뻔했다.

만성 두통 치료 중인 ㄴ씨. 뒷목이 당기면서 심한 어깨 통증을 호소한다. 침치료를 위해 등을 확인한 순간 아찔했다. 어깨 맨 윗부분에 자가 치료했다는 부항자국들이 시커멓게 나 있다. 근육층이 얇은 부위라 자칫 침이 조금만 비켜서 깊이 들어가면 바로 폐를 찔러 기흉을 유발한다. 한마디로 폐에 구멍이 나서 호흡곤란으로 응급상황이 될 수 있다.

만성 설사로 내원한 ㄷ씨. 한달 넘게 설사를 하다보니 항문 주변이 헐고 따가워 걸음 걷기조차 힘들다. 수일 전에는 배탈 설사가 너무 심해져 응급실까지 찾았다. 장염 진단을 받고 약을 먹은 뒤 심한 설사는 멎었지만, 증상은 좀처럼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혹시 복용 중인 다른 약이나 음식이 있는지 확인하니 “아침저녁으로 녹두죽을 먹는다”고 했다. 환자는 “TV에서 녹두가 해독작용이 탁월해 몸에 좋다더라”며 “속도 불편하고 설사도 나서 장 해독도 할 겸해서 먹는다”고 말했다. 또 양기가 부족한 노인들에게 좋다며 복분자를 직접 담가 술로 한잔씩 먹는다고 했다.

물론 녹두는 해독작용이 강하다. 열독으로 인한 피부병이나 종기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에는 “녹두로 베갯속을 만들어 베면 머리가 서늘해져 두통이나 눈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나와있다. 녹두의 이러한 효과는 모두 기운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찬 약성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는 소음인으로 속이 냉한 체질이다. 녹두는 열이 많은 병증에는 해독효과를 나타내지만, 속이 냉한 경우에는 그 자체로 독이 된다. ㄷ씨의 장염은 노인성으로 양기가 떨어져 속이 더 냉해진 것이다. 여기에 계속 찬성질의 녹두를 아침저녁으로 먹었으니 병이 낫기는커녕 더 심해진 것이다. TV도 환자도 해독이 되는 이치는 접어둔 채, 만병통치처럼 여긴 결과다. 녹두죽과 복분자 술을 중단케 하고, 속을 따뜻하게 하는 왕뜸치료를 했다. 그런데, 얼마간의 치료로 증상이 호전되자 환자는 “녹두를 많이 사둬 아까운데 이제라도 먹으면 안될까”라고 묻는다.

공자는 “작은 지혜를 행하기 좋아하는 이는 참으로 구제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앎과 모름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행동부터 옮긴다면 자신을 마루타 삼는 것이다. 조급함은 의료행위나 음식만 관련되진 않는다. 자신이 행하는 말과 행동 중에 모르면서 서둘러 행하는 위태로움은 없는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재앙은 대부분 앎과 모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판단을 서둘러 생겨난다. 알고 행하지 않는 것도 허망하지만, 모르고 행하는 것은 더 위태롭다. 모른다면 물어야 한다. 적어도 자초한 위험과 허물은 면하게 된다.

<강용혁 분당마음자리 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