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장애와 에디슨의 어머니
틱장애와 에디슨의 어머니
  •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5.10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디슨은 2000여번의 실패 끝에 전구를 발명했다. 수많은 실패를 반복했을 때의 기분을 묻자, “나는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전구가 빛을 내지 않는 2000가지 원리를 확인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틱장애와 잦은 구토 때문에 내원한 초등생. 해외에서 귀국한 뒤 틱이 잠깐 있었지만 신경안정제를 먹고 금방 호전됐다. 그런데 최근 부쩍 심해졌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다. 이젠 배가 아프고 자주 토하기까지 한다.

엄마는 “아이가 늦되는 편이라 선생님 스타일에 적응을 못한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시험성적이 나오면 하위권 아이들을 일일이 불러 세운다. 그리곤 “너희들이 반 평균 다 깎아먹었다”며 노골적으로 면박을 준다. 아이들이 보는 데서 “커서 뭐가 될래”라며 웃음거리를 만든다.

선생님도 어렵지만 반 친구들에게도 낙인이 찍혔다. 이제 아이도 기를 쓰고 밤늦게까지 엄마와 공부한다. 그런데 엄마도 마음만 급해 “이것도 모르냐”며 화내기 일쑤다. 결국 매일 밤 속상한 엄마와 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대성통곡하는 일이 반복됐다.

아이는 태음인이다. 눈치 빠른 소양인, 사고력이 우월기능인 소음인과 다르다. 몸으로 익히고 체험을 반복해야 서서히 문리가 트이는 대기만성형이다. 뭘 해도 초기 적응에 시간이 걸린다. 이를 못 기다리고 재촉하면 시쳇말로 똥줄만 탄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너무 쉽고 잘 아는 것마저도 당황해 순간 머릿속이 깜깜해진다.

엄마는 학교나 교육청에 민원을 넣을까도 고민 중이다. 그러나 또 다른 불이익이 생길까봐 망설이고 있다. 교육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격하게 토로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교과부 장관이나 정권이 바뀐다고 단박에 해결될까. 그때까지 상처받는 내 아이는 누가 지켜줄 것인가.

세상에는 슈바이처 같은 의사나 훌륭한 인격의 교사만 존재하진 않는다. 어딜 가도 거친 현실은 있기 마련이다. 이를 견뎌 낼 힘이 바로 공부다. 언제부터인가 공부라면 국영수만 떠올리고, 삶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 다양한 배움은 외면하고 있다.

아이에게 부족한 것은 그런 배움과 자기긍정의 시선이다.

그런데 엄마는 어떠했는가. 국·영·수 외에 다른 비전은 제시해주었던가. 손수 알을 품어 부화하겠다는 에디슨을 기다려준 엄마처럼 용기는 주었던가. 아니면 당장 못하면 영원한 낙오자가 될 거라며 겁박했던가. 문제 선생님의 교육관을 더 충실히 강요한 건 아닌가.

비록 밖에서 상처받았어도, 엄마의 지지가 있었다면 틱과 구토는 생기지 않는다.

학교에서 노심초사하다 온 아이를 집에서도 몰아붙인 철학부재의 교육관이 진짜 구토유발자다. 이런 식이라면 명문대를 간들 2000번씩이나 실패를 견딜 힘이 있을까. 언젠가 단 한번 실패로도 주저앉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면, 그 책임이 과연 대학총장에게만 있을까. 정치인이 모두 해결해줄 수 있을까.

자신을 혼내던 엄마가 야단맞는 분위기가 되자 아이의 눈빛도 달라졌다. 한 단계 낮은 교재로 공부하되, 하나를 풀어낼 때마다 칭찬할 것을 권유했다. 노심초사로 혈이 마른 아이에겐 안정제 대신 보약을 처방했고, 틱과 구토는 모두 사라졌다.

세상이 심한 현기증을 일으켜도 부모가 중심을 지키면 아이들은 견뎌 낸다. 그러나 주위시선과 평가에 휘둘리는 엄마의 자신감 부족은 아이에게 자기긍정의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낮은 자아존중감은 결국 불안과 우울의 씨앗이 된다.

헤르만 헤세는 “인생에 주어진 의무란 없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이다”라고 했다. 행복으로 가는 길 위에서 국·영·수 이외의 이정표는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정작 공부가 절실한 건 부모들이 아닐까 싶다.

<강용혁|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