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극복은 전적으로 내 몫
콤플렉스 극복은 전적으로 내 몫
  •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5.24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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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蓮)은 흐린 연못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척박한 진흙 바닥에 물들지 않고 청정한 기운을 뽑아 올려 꽃과 열매를 맺는다. 뿌리는 물론 줄기와 잎, 꽃 그리고 연밥과 연밥 속의 새싹까지 모두 요긴한 약재다. 기혈을 보하고, 뭉친 어혈을 풀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향기와 함께 세상에 전한다.

화병과 불면증으로 내원한 학원강사.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학부모들의 사소한 요구에도 스트레스가 심하다.

환자는 “왠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뒤에서 비난하는 것 같다”면서 “이런 내가 나도 싫다”고 말한다. 사소한 갈등에도 혼자 괴로워 밤을 샌다. 결국 필름이 끊길 정도로 폭음한 뒤, 억눌렸던 말을 토해내곤 다시 후회한다.

남편에게 이유 없이 짜증을 내고, 동료들이 상처 준다 여겨 직장도 옮겼지만 매번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

성정분석 결과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컸다. 부모님은 어린 자식들 앞에서 자주 싸웠다. 남의 말은 듣지 않는 일방통행식인 아버지는 자식에게도 무섭고 강압적이었다. 사업실패 뒤에는 더 큰 그림자를 전가했다.

남편에게서 상처받은 엄마 역시 우울과 불안을 그대로 드러냈다. 늘 ‘아빠를 빼닮았다’며 어린 딸에게 분풀이를 했다. 부부싸움 후엔 환자만 빈집에 홀로 남겨두고 남동생만 데리고 며칠씩 가출하곤 했다. 이런 엄마에게조차 인정받고 싶어 좋은 성적을 받아와도 반응은 늘 시큰둥했다.

좋은 학벌과 직장 등 겉보기엔 나무랄 데 없지만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졌다. 또 아빠의 강박적 성향은 조바심과 불안한 인격으로 대물림됐다. 사랑받고 싶었던 본능적 욕구 한편에 상반된 증오의 감정이 구분 없이 뒤엉켜 있다.  


처음엔 상처를 외면하려고만 했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상처가 됐기 때문이다. 애써 부정하고 없던 일처럼 잊으려고만 했다.

그러나 깊이 각인된 상처를 억압하면 점점 인격의 일부가 되어 계속 발목을 잡았다.

상처 치유는 과거를 통째로 지우는 것도, 상처 준 이를 원망만 하는 것도 아니다. 또 정반대로 과잉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에게 못 받은 만큼 내 자식에게는 최고만 주겠다며 한풀이하듯 집착하는 것도 한 예다. 모두 자신의 상처와 제대로 화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3대에 걸쳐 대물림한다. 현실이 더욱 부정적이며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상처에 응어리진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와 내 부모의 인격적 한계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이다. 현재의 내가 완벽하지 못한 것처럼 내 부모 역시 부족한 상태에서 나를 키운 것뿐이다. 이제 와서 ‘왜 흐리고 탁한 진흙탕에서 키웠는가’라며 부모나 환경만 탓해선 달라질 게 거의 없다.

연꽃 열매인 연자육이 주약인 한약과 면담 치료를 병행했다. 왜 대인관계에 늘 부정적이며 자신감이 없었는지, 이유 모를 죄책감의 실체가 무엇인지, 참기만 하다가 한꺼번에 엉뚱한 데서 폭발하는 원인을 차츰 이해하면서 몸도 대인관계도 좋아졌다. 환자는 “학생들에게 불쑥 화내던 내 모습이 모두 어릴 적 부모님과 닮아있었다”며 자신을 돌아볼 힘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상처로 지금의 인격을 형성한 건 맞다. 그러나 부모 탓과 원망만으론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알고 극복해나가는 건 전적으로 내 몫이며 내 책임이다. ‘나는 원래 그래’라며 체념하기보다 맑고 향기로운 가치를 세상에 전하는 연꽃에서 배워야 한다.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부모가 물려준 상처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한다.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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