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바꿀 때 가장 가치있는 돈
행복과 바꿀 때 가장 가치있는 돈
  •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5.31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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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다.” 맹자는 사람들이 닭과 개가 집을 나가면 찾을 줄 알아도, 자신의 마음을 놓아버린 건 찾을 줄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갱년기장애로 내원한 한 중년 주부. 남편은 “큰딸이 작년 결혼한 뒤 아내가 말수가 부쩍 줄고 우울해한다”면서 “그냥 넘어갈 일도 짜증을 내고, 집안일도 만사 귀찮은 듯 멍하게 있는다”고 말한다. 여성호르몬 저하에 도움될 한약을 원했다.

물론, 전문가들도 여성호르몬 감소를 갱년기 원인으로 꼽는다. 그래서 몸의 문제로만 보고 호르몬 보충을 능사로 여긴다. 그러나 갱년기증후는 모든 여성이 다 경험하는 것도, 그 불편함의 정도가 동일한 것도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 소통이 원활하면 사춘기 일탈이 크지 않듯이, 부부 간 소통이 원활하면 갱년기를 모르고 지나는 여성도 많다. 호르몬만큼이나 부부 간 소통이 고갈되지 않았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노후 부부관계도 원만해진다.

상담 결과, 아내는 남편의 지나친 가사 개입이 늘 못 마땅했다.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생활비 지출용도를 남편이 결정한다. 물론 남편은 자수성가했고 성실하고 가정적이다. 구두쇠 스타일도 아니고 꼭 써야 할 때는 통 크게 쓴다. 그러나 유독 멋을 내거나 여가를 즐기는 용처에는 강박적으로 돈을 못 쓰게 한다. 지금껏 꽃 선물을 받아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결혼기념일에도 호텔식사는 꿈도 못 꾼다.

젊어서는 꼭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년 이후 살 만하고 경제적 여유가 생겼는데도 남편은 여전히 막무가내다. 갱년기 증상도 딸을 시집보낸 뒤 마음이 울적해 주방도 바꾸고 그릇도 새로 사고 싶었지만 남편이 반대한 뒤부터 시작됐다.

아내는 “내가 돈을 벌지 않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인생을 헛산 것 같다”고 한탄했다. ‘노후 대비를 위해 아끼자’는 남편의 태도를 바꿀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동안은 자식들 위한다는 명분으로 참았지만, 자식마저 독립한 뒤엔 상실감이 더욱 커졌다.

남편의 태도는 지난 삶의 결과물이다. 특히 자수성가한 이들의 무의식엔 항상 ‘어려웠던 과거로 돌아가면 어쩌나’라는 불안감이 크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재물을 많이 쌓아두면 피할 수 있다고 여긴다. 직관력이 떨어지고 과거 방식만을 강하게 기억하는 태음인들에게 특히 잘 나타난다.

이런 불안은 동전의 양면이다. 젊은 시절 남들보다 더 인내하고 노력해 지금의 성취를 이룬 동력이다. 그러나 시소의 한쪽에만 계속해서 무게가 실리면 반대쪽은 심하게 올라가고 그림자도 커진다. 아내가 겪는 어려움이 바로 그런 그림자 때문이다.

삶의 후반부에는 그동안 시소의 한쪽에만 올려놓았던 힘을 반대쪽으로 옮겨,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 방식대로 한쪽에만 힘을 주면 시소의 지렛대는 결국 부러지고 만다. 과거 방식을 죽을 때까지 고집하기보다, 중년 이후엔 죽을 듯이 바꾸려는 노력이 더욱 멋있다. 비바람 치던 시절 움켜쥐었던 우산을 접지 못하면 맑은 햇볕은 평생 즐기지 못한다. 과거라는 그림자 속에 갇혀 살게 된다.

갱년기 아내의 일차 치료자는 남편이다. 돈을 어디에 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이다. 그러나 돈은 쌓아두기보다 행복과 바꿀 때 가장 가치가 있다. 아내가 마음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콩나물 값은 아끼더라도 폼나는 옷 한 벌 사는 것도 가치가 크다.

공자도 인생에서 항상 안전한 길만 가는 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널 것이다”라고 했다.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으로 눈앞의 행복과도 바꾸지 못하는 돈이야말로 가장 값어치가 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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