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자긍심이 병을 부른다
지나친 자긍심이 병을 부른다
  •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 승인 2012.06.14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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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을 섬김에 자주 간언하면 욕을 당하고, 친구 간에도 자주 충고하면 곧 소원해진다.’ 충고는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가 전제되기에 상대의 자존심을 배려해야 한다는 논어의 가르침이다.

불면증으로 몸이 약해진 여중생. 몇 개월째 깊은 잠을 못 자고 수차례씩 깬다. 꿈을 자주 꾸고 가위에 눌리면서 끈적끈적한 땀까지 흘린다. 자고 나도 개운하지 않고 소화력과 입맛이 떨어져 몸이 자꾸 마른다. 신병훈련소의 군인처럼 눈빛에 긴장과 초조함이 가득 배어 있다.

몸과 마음이 이렇게까지 지친 건 친구들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장애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쓴소리를 한 게 발단이었다. 아이는 “옳지 않은 행동에 구역질이 났다”며 심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만 괴롭히라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선생님께 알렸고, 불려가 혼이 난 친구들은 “혼자 영웅 되니 좋냐”며 계속 비아냥거렸다. 혼자 고립된 느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갈등이 생겼다. 다른 반 친구가 교실에 들어와 휴지를 버리고 가자 “주워서 가라”고 말한 게 일이 커졌다. 얼마 뒤 힘센 친구들을 여럿 데려와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뛰고 불안한 마음에 공부도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부모에게 전학을 요구했다.

아이는 분명 옳은 일을 했는데 칭찬은커녕 왜 이렇게 힘든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우선,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공부에도 눈높이 교육이 필요하듯, 옳은 일도 상대의 수용 여부가 중요함을 설명했다.

아이의 생각이 모두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옳은 것보다 때로는 좋아하는 것이나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순간의 합리화로 언제고 옳은 것을 외면할 수 있다. 3가지의 순위는 각자의 가치관에 달렸다. 내가 옳음을 선택했다고 상대는 이익과 좋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식은 나만의 고집이다.

특히 아이처럼 소음인에게서 잘 드러난다.

사고가 우월하고 감정이 열등해, 자기 사고에 깊이 몰입하다보니 주변의 감정파악은 늘 소홀하다. 결론이 나면 어떻게든 표현하고 행동을 서두른다. 차근차근 상대를 설득하는 노력 대신, 불쑥 결론만 전하고 “내가 옳은데 왜 못 받아들이냐”며 짜증낸다. 내가 아무리 옳아도,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나 여력이 없다면 때를 더 기다려야 한다.

아이에게 “선생님이 딱 1등 수준에만 맞춰서 수업을 하면 옳은 걸까? 그런 뒤에 바로 못 알아듣는다고 야단치면 어떨까”라고 물었다. 아이는 “불만을 갖는 학생들도 많을 것 같다”며 이제 알겠다는 듯 처음으로 빙긋이 웃었다.

상대 원망보다 충고를 되풀이하려는 자신도 돌아봐야 한다. 진정 상대를 위해서일까? 대의와 명분을 앞세워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나의 옳음을 서둘러 입증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던가. 결국, 때를 서둘러 감당하기 어려운 화가 자신에게 미친다.

이때, 상대를 틀렸다 비난하고 세상 원망만 하면 우울증과 화병으로 빠진다.

그래서 이제마는 “소음인이 세상에 경륜을 전하려면 지나친 자긍심부터 없애야 한다(少陰人 經綸, 不可矜也)”고 지적했다. 내가 옳다는, 그래서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의 뿌리를 보지 못하면 남 탓 세상 탓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진실도 상대 마음이 아프지 않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상대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이다.

그래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욕먹고 속박되어도 홀로 행복하라는 가르침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 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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