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이 무효인 소변강박증 수험생
백약이 무효인 소변강박증 수험생
  • 강용혁 | 한의사·분당마음자리한의원장
  • 승인 2012.07.05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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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속이면 어느 순간 자기 몸도 자기 것이 아니게 된다. 오직 자기자신을 잘 관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오늘 하루에 충실할 수 있고,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소변 강박증으로 내원한 수험생. 수업 중에 소변이 마려워 집중을 못한다. 심지어 시험 중에도 문제를 대충 풀고 빨리 화장실로 달려가야 한다.

증상은 학원이나, 학원을 오가는 대중교통 안에서 자주 나타나고 집에선 멀쩡하다. 그 수험생의 어머니는 “검사상 이상도 없고, 안정제와 보약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학원도 옮겼지만 성적은 늘 제자리에 머물렀다.

아이는 중학교 수학여행 도중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소변이 마려워 버스를 정차시켰던 일을 언급했다. 버스에 오르자 전부 자신만 쳐다봐 창피했던 기억이다. 아이의 생각대로 이게 트라우마가 된 걸까?

그리고 이 때문에 집중을 못했고 성적도 떨어졌을까. 언뜻 보면 시간순서나 논리적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아이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착각이다.

아이의 강박증은 수능과 성적 압박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적을 서둘러 만회하려는 욕심에 지레 기가 꺾인 탓이다.

아이는 작년에 대학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형이 모두 명문대 출신이라 스스로 재수를 택했다. 그런데 벌써 몇 차례 본 모의고사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 무렵 소변 강박증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최근 모의고사를 치르기 며칠 전부터 증상은 절정에 달했다.

이 무렵 아이의 무의식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동안의 준비로는 이번 시험도 잘 보긴 어렵다는 점과, 그 결과를 부모님은 물론이고 자신조차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공부하기 싫다’, ‘포기하고 싶다’고 말할 순 없다.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아이의 무의식이 선택한 돌파구가 바로 소변 강박증이다.

소변 때문에 평소 공부도, 중요한 시험도 집중을 못했고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부모나 자기 자신에게도 좋은 명분과 면죄부가 주어진다.

이는 이솝우화 ‘여우와 신 포도’의 내용과도 상통한다. 배고픈 여우가 맛있게 익은 포도를 발견한다. 얼른 따고 싶지만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포기하려니 눈에 아른거려 포기가 안 된다. 결국, ‘저건 시어서 못 먹는 포도야, 못 따는 게 아니라 신 포도라 따지 않는 거야’라며 합리화하고 만다.

꾀병이 아니다. 더 큰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자신마저 감쪽같이 속여버리는 것이다. 누가 봐도 그럴듯하고, 심지어 의사조차 깜빡 속기 쉽다.

이 같은 현상은 기대치와 현재 성적의 간극이 큰 수험생들에게도 자주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쏟아지는 졸음이다. 책상에만 앉으면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다.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기 힘든 두통이나 설사, 복통으로도 나타난다. 단순히 체력저하나 몸의 문제로만 여기기 쉽지만, 실상은 몸의 주인인 마음의 기세가 꺾인 것이다. 자신의 무의식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이제부터는 어떤 마음을 일으켜야 하는지를 이해한 뒤로 아이의 증상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눈은 온통 저 높은 산정상의 결과물에만 미리 가 있고, 지금 내 발이 디디고 있는 현실을 쳐다보지 않으면 무의식은 순간 착각을 일으켜 자신마저 속여버린다. 그 대가가 강박증이나 원인을 알기 어려운 질병들이다.

공자는 “먼 헤아림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다”고 했다. 맹자 역시 “평생의 걱정은 있지만, 하루 아침의 근심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큰 목표가 정해졌으면 하루하루 쌓아 가는 것뿐이다.

될까 안될까 미리 결과에 조바심을 내면 번뇌만 깊어진다. 결국, ‘언제 다 올라가려나’ 싶어 지레 포기하고 내려갈 오만가지 명분들이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강용혁 | 한의사·분당마음자리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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