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없애려면 자신부터 알아야
‘화’를 없애려면 자신부터 알아야
  •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 승인 2012.07.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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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이은 파도처럼 분노는 힘에 넘쳐 순간 그곳을 지배한다. 그러나 물러간 뒤엔 달라진 것도, 이루어진 것도 없다. 계속된 분노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상대의 허물이 아닌 자신의 게으름 속에서 분노의 실체를 찾아야 한다. 

만사가 짜증나고 화가 나서 가슴이 답답하다는 주부. 역류성식도염과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단을 받고 몇 년째 약물치료 중이지만 불편함은 계속되고 있다. 아침만 되면 깨질 듯한 두통과 불면증, 혈액순환장애까지 호소했다.

순간 이유 없이 감정이 동요하면 참을 사이도 없이 폭언을 쏟아낸다. 금방 심했다싶어 후회를 하고 안 그러리라 다짐해보지만 반복된다. 오히려 주기가 짧아지고 화내는 수위나 표현도 거칠어진다. 분노를 억압하며 참는 것이 울화병이라면, 겉으로 폭발시키는 것은 분노조절장애(Anger disoder)다. 아이가 붙여준 엄마의 별명도 ‘앵그리 페이스(Angry face)’다.

환자는 태음인으로 그동안 쌓인 게 많았다. 남편은 부동산, 주식투자, 개인사업 등 손대는 것마다 실패를 반복했다. 그러나 환자는 “남편이 노력을 안 한 게 아닌데 이상하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이제는 남편 입장도 다 이해하는데, 왜 화는 계속 나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인다.

사상의학에서는 분노의 실체를 ‘노성(怒性)’과 ‘노정(怒情)’으로 구분한다. 성이란 마음의 본질이며, 정이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분노의 실체 역시 둘로 구분된다.

진정 화가 난 사람은 눈빛에서만 분노가 엿보인다. 요란하게 화내거나 소리지르지 않는다. 대신 혼자라도 할 일을 찾아 분주히 노력한다. 이것이 노성이다.

반면 노정은 분노조절장애처럼 겉으로 소리지르고 화내고 짜증낸다. 그 실체는 진정한 분노가 아니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은 마음은 조급하지만, 실천할 마음은 이미 식었고 게을러진 것이다. 나는 할 마음이 없는데 그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남을 탓하는 자기방어다.

최근 환자가 심하게 화를 냈던 예들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다쳐서 들어오는 아이를 보자마자 화가 폭발했고, 아이가 방금 가르쳐준 수학문제를 빨리 이해 못하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환자는 아이가 잘못하니까 내 마음에 분노가 생겼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아이가 다쳤는데 왜 화부터 날까.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흉터가 남지는 않을지부터 생각했다면 측은하고 걱정이 앞선다. 대신 ‘안 그래도 바쁜데 또 귀찮은 일이 생겼다’ ‘병원비 들어가겠다’라며 아이보다 자신부터 걱정하는 게으름이 화와 짜증의 실체다.

함께 공부할 때의 짜증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면 다른 방법으로 다시 차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화가 나지 않는다. 대신 이런 노력이 귀찮아지면 버럭 화가 난다. 애초에 가르치기가 귀찮았던 자기 마음이 화의 본질이다. 화부터 내고 자신의 게으름을 가리려 상대의 행동을 명분으로 삼는 것뿐이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번 사업에 실패했다면 측은함이 먼저다. ‘나라도 벌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계속 노력해보자’는 마음이었다면 화는 나지 않는다.

그제야 환자는 “언제까지 내가 힘들게 육아와 맞벌이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털어놓았다.

성정 분석치료와 화와 열을 내려주는 한약으로 그동안 변화가 없던 두통과 불면증도 사라졌다. 또 화나는 순간 상대가 나를 화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이미 어떤 게으름이 있었는지부터 돌아보게 했다.

그를 바로 알면 자신이 자신을 속일 수 없기에 화내는 일은 줄어든다.

반면 순간의 게으름을 찾아내지 못하면 아무리 후회하고 다짐해도 분노는 줄어들지 않는다.

<강용혁 | 분당 마음자리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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