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보약? 밥에 중독되는 탄수화물중독증
밥이 보약? 밥에 중독되는 탄수화물중독증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2.10.3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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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밥이 보약’이란 말이 있다. 밥만 잘 먹어도 건강해진다는 말이다. 또 밥이라도 잘 먹으면 걱정이 없겠다는 어려웠던 시절을 애써 자위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의서를 보면 쌀(멥쌀)은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위장의 기운을 고르게 하고 살찌게 하며 속을 덥히고 기를 보한다고 했다.
 
우리 어릴 때 초등학교시절 도시락을 보면 잘 사는 집 아이들은 밥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흰쌀밥만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런 쌀밥은 우리 민족의 주식이었고 마치 물처럼 아무런 해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런 밥, 특히 쌀밥에 중독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정확히 표현하자면 밥의 주성분인 탄수화물에 중독되는 것이다. 탄수화물에 중독되면 빵이나 단맛이 나는 과자류나 초콜릿 등을 많이 찾게 되며 회식자리에서도 꼭 밥 한 공기를 먹어야 정신을 차린다. 

어느 젊은 20대 후반의 여성환자는 밀가루가 안 좋다고 해서 간식거리를 그나마 바꾼 것이 떡이다. 이는 탄수화물중독증상으로 볼 수 있다. 탄수화물중독은 하루에 필요한 적정탄수화물의 섭취량보다 더 많은 양의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몸이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탄수화물에 중독되면 당분이 많은 음식을 갈망하게 되는데 탄수화물은 쉽게 포도당으로 전환, 흡수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높아진 포도당 때문에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고 이 경우 다시 혈당이 낮아져 당분이 많은 음식을 또 찾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보통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음식을 찾게 되는데 당분을 먹으면 세로토닌이 분비되면서 잠시나마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단 음식을 먹게 되면 단맛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더 단 음식을 먹지 않으면 불안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우울해지는 ‘슈거블루스(sugar blues)’ 증상이 찾아온다.
 
빵이나 밀가루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를 끊는 것은 마치 골초흡연자가 담배를 끊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문제는 탄수화물(포도당)을 포함한 과도한 단 음식의 섭취는 결국 비만으로 이어져 당뇨, 동맥경화증이 쉽게 생기고 우울증도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맛은 어느 정도 비장을 편안하게 하고 돕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단맛이 지나치면 비장의 기운을 실(實)하게 만든다. 여기서 실은 좋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 넘쳐흐른다는 의미다. 허한 것도 안 좋지만 실한 것도 병이다.
 
동의보감을 보면 “비장이 실하면 배가 불러오고 몸이 무겁고 배가 쉽게 고파진다”고 했다. 지나친 단맛은 결국 비장을 실하게 만들어 쉽게 배가 고파지게 하고 단맛을 더 많이 먹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지금 말하는 비장은 요즘의 비장이 아니고 위장 뒤에 붙어 있는 췌장을 말한다. 소화효소를 분비해 소화기능을 담당하는 췌장이 과거에는 비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서양의학이 들어오면서 장부를 한의학의 오장육부와 연결하는 과정에서 족보가 엉망이 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췌장과 비장을 서로 바꿔 불러야 한다. 어쨌든 여기서의 비장은 췌장으로 이해하기 바란다.
 
지나치게 단맛을 찾는 것을 억제하려면 실해진 비장의 기운을 억눌러야 한다. 바로 쓴 음식을 먹는 것이 방법이다. 쓴맛은 비장을 억누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쓴맛이 강한 깽깽이풀(황연)이나 탱자열매(지실)는 과열된 비장의 기운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약재다.
 
맛으로 장부의 기운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이 아니더라도 쓴맛을 내는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쓴 음식은 과도한 비장의 기운을 안정시켜 주는 작용을 한다.
 
탄수화물중독증은 식단을 갑자기 확 바꾸게 되면 금단현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혈당지수가 낮은 음식으로 서서히 바꿔야한다. 또 흰쌀밥 대신 현미나 보리 등 다른 혼합곡식을 넣어 먹는 것이 좋다.
 
섬유질이 많은 음식을 많이 먹는 것도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섬유질은 장을 건강하게 하면서 혈당을 조절해 식욕을 줄이고 탄수화물이 넘쳐나게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특히 씀바귀, 돌미나리, 달래, 당귀, 샐러리, 신선초과 같은 쓴맛이 나는 채소들은 비장의 기운이 실해지는 것을 막기 때문에 단맛을 줄이면서 나타나는 금단증상을 줄여줄 수 있다. 이제 밥이 보약인 시대는 지났다.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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