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되는 쓴맛 vs 건강을 되살리는 쓴맛
독이 되는 쓴맛 vs 건강을 되살리는 쓴맛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5.09.02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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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쓴맛은 독성분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피하는 맛이다. 인간의 혀는 에너지원, 즉 당분을 섭취하기 위해 단맛을 느끼게 됐고 독이 들어 있는 것을 먹지 않기 위해 쓴맛을 느껴야 했다. 이 때문에 단맛을 선호하고 쓴맛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혀가 쓴맛을 느끼면 우리 몸은 매우 활발한 면역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독성분일 수 있기 때문에 위액분비가 촉진되고 위장기능이 활발해지며 호흡기나 장점막의 면역반응이 증가한다. 쓴맛은 해독해야 하는 성분이기 때문에 해독반응도 활발하게 일어난다.

쓴맛을 다르게 느끼거나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미맹(味盲)이라고 하는데 백인이 30%, 황색인이 15%, 흑인은 2~3% 정도다. 아마도 백인은 육식 위주의 식생활 때문에 식물성 독성분인 쓴맛에 둔감하고 황인종(동양인)이나 흑인(밀림의 원주민)은 식물에서 식량을 얻어야 했기 때문에 독을 피하기 위해 쓴맛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쓴맛은 한의학적으로 화(火)에 속하며 심장을 보하는 맛이다. 심장을 안정시키고 진정시켜준다. 기미론(氣味論)적으로 기운을 아래로 내려주면서 진정작용을 한다. 또 성질은 서늘하면서 열을 내려주고 대변을 통하게 한다. 염증에 의한 부종을 가라앉히고 위액분비를 촉진시키며 혈액의 기운과 음적인 기운을 보한다. 쓴맛의 성분은 달라도 대체로 비슷한 작용을 한다.

식품에서 쓴맛을 내는 성분은 다양하다. 독성을 띠는 식물독은 대부분 알칼로이드성분이다. 커피와 녹차는 카페인 때문에 쓰다. 또 코코아의 테오브로민, 키나나무의 퀴닌도 쓴맛을 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리활성물질도 쓴맛을 낸다. 양파껍질의 퀘르세틴, 귤껍질 안쪽의 흰색성분인 헤스페리딘, 오이꼭지의 쿠쿠르비타신 등이다. 맥주에 들어가는 호프도 마찬가지다. 콩이나 도토리의 사포닌, 메밀의 루틴도 쓴맛이 난다.

본능적으로 독이라고 감지됐는데도 쓴맛을 삼킬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조상들의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효과 덕이다. 쓴맛이 강한데도 커피나 녹차는 카페인 때문에 중독된다. 써서 도저히 삼킬 수 없었던 여주(쓴오이, 모모르데신성분)를 먹은 후 당뇨병이 좋아지고 한약재 중에서도 가장 쓰다는 황연(베르베린 성분)을 먹고 위염이 좋아진다. 쓴맛이 나는 동물의 담즙을 술에 타서 먹는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입맛이 쓰거나 유독 쓴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잘 자고 일어나면 입안에 단맛이 돌고 반대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쓴맛이 느껴진다. 침에는 당단백질성분인 면역글로블린세포들이 있는데 쓴맛이 심하게 느껴지는 날은 이 세포분비가 줄어 해독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쓴맛에 예민해지는 것이다.

쓴맛을 주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운이 가라앉고 무기력하면서 우울감이 심한 경우 쓴맛을 먹으면 더 심해진다. 이 때는 약간 달콤하고 매운맛이 필요하다. 또 면역력이 떨어져 있거나 해독기능이 약한 경우 쓴 것을 많이 한꺼번에 먹으면 구토가 일어난다. 과거에는 일부러 구토를 시키기 위해 쓴맛이 심한 참외나 오이꼭지를 갈아 먹기도 했다. 쓴맛이 약이 되고 독이 되는 것은 용량에 따라 결정된다.

“당신의 미각이 당신의 건강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맛을 골고루 느끼는 것은 건강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한마디로 오미(五味)는 오장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요즘의 식생활에서는 가급적 단맛이나 짠맛을 멀리하고 일부러라도 쓴맛을 찾아 먹을 필요가 있다. 혀에서의 쓴맛은 몸에서는 건강한 단맛으로 보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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