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중국은 ‘재주’도 좋아요
‘영리’한 중국은 ‘재주’도 좋아요
  • 신민우 기자 (smw@k-health.com)
  • 승인 2016.01.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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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우 기자의 ‘불타는 금요일 뜨거운 보건이슈’] 1964년 2월 미국. 영국 전설적인 록그룹인 ‘비틀스’가 부른 명곡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가 빌보드차트 핫100 정상에 오릅니다. 자기나라 문화에 자부심이 강한 미국인들조차 ‘4명의 더벅머리’에 열광했죠. 뒤이어 롤링스톤즈, 킨크스 등 영국가수들이 앞다퉈 미국에 ‘문화폭격’을 가했고요. 1960~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문화현상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입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시대를 연 비틀스는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로 엄청난 미화(美貨)를 고국에 안겨줍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2016년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미국에 대한 문화폭격이라고 하니 ‘강남스타일’이 떠오르셨나요? 미안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지금은 중국에게 폭격 받는 우리나라를 이야기하려는 거니까요. 최근 제주도가 중국에 잠식돼 간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가히 ‘차이니즈(Chinese) 인베이전’이라 불러도 손색 없겠군요. 단 영국과 차이가 있다면 폭격수단이 자본이라는 거겠죠.

‘천조국’(국방비가 천조에 이르는 미국을 빗대어 부르는 말) 미국조차 부러워하는 국내 국민건강보험은 우리의 자랑거리입니다. 하지만 중국자본의 제주도 잠식, 건강보험체계에 대한 위협……. 이를 기우(杞憂)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불타는 금요일 뜨거운 보건이슈’ 이번 시간에는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풀어보겠습니다.

지난달 18일 보건복지부는 제주헬스케어타운에 설립될 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 사업계획승인을 발표했습니다. 녹지병원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결과 국내법령상 설립요건을 충족했다는 판단이었죠. 아래 표는 복지부가 발표한 요건충족내용입니다.

 

녹지병원은 의사 9명, 간호사 28명, 병상 47개 규모로 구성됩니다. 제주도를 찾은 외국관광객, 그 중 중국인이 주 고객이죠. 피부관리·미용성형·건강검진 등 ‘의료관광형’ 진료과목이 주로 이뤄지고요.

모기업 녹지그룹은 중국 상해시가 50%를 출자한 국영부동산기업으로 2014년 매출액이 4021억위안(한화 71조원)에 이릅니다. 정말 건실한 회사군요!

녹지그룹은 2012년 10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1조원 규모의 ‘제주헬스케어타운’ 사업협약을 체결했습니다. 2014년에는 6000억원을 추가투자했고요. JDC홈페이지에는 총사업비가 1조5214억원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가운데 공공부분은 1720억원, 민간부분 1조3494억원에 달합니다. 사실상 녹지그룹이 사업의 모든 비용을 투자한 셈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지난해 2월 녹지그룹이 병원설립사업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혜논란이 불거집니다. ‘영리추구’성향을 가진 외국계 투자개방형병원이라는 거죠.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지는 외국계 투자개방형병원 ‘녹지국제병원’을 세우는 녹지그룹은 중국 국영부동산기업입니다. 좀 뜬금 없긴 하네요. 부동산기업이 병원을 운영한다니......

국내 의료법 상 병·의원은 국가·지방자치단체·의사·의료법인·사회복지법인만 세울 수 있습니다. 법인은 비영리목적으로만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 거죠. 대기업계열 종합병원이 대표적 예입니다.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서울아산병원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지분을 갖고 있으니까요.

반면 녹지병원은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라는 외국인투자법인이 주체입니다. 즉 사기업처럼 돈을 벌기 위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모든 의료기관에 건강보험체계가 적용되는 당연지정제에도 포함되지 않아 의료서비스가격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예로 국내 피부과에서 진료비를 1만원 받는다면 녹지병원은 2만원을 받든 5만원을 받든 제재방법이 없다는 거죠.

당연지정제에 해당하지 않는 녹지국제병원에서 의료진이 “자라나라, 영리영리!”를 외칠 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사진= 녹지국제병원 조감도)

이 점을 두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외국계병원인데 왜 국내 건강보험체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거지?”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체계가 적용되지 않는 병원을 굳이 왜 만들려는 거지?”라고 묻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또 다른 의문 하나. “다른 의료기관보다 진료비도 비싸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데 우리 국민 가운데 누가 진료를 받으려 할까?”입니다. 이 논리는 정부에서도 내세웁니다. 보건복지부가 녹지병원 승인을 발표할 때 “내국인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병상규모·의료인·지리적 제한 등을 감안할 때 국내보건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거든요.

제주특별자치도 원희룡 도지사도 지난달 21일 주간정책회의에서 “녹지병원이 공공의료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는 실제 외국인영리병원을 만들고자 한 본래 취지와 각도가 다르다”고 반박하기도 했죠.

하지만 영리병원에 대한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닙니다. 현행법 상 외국계 투자개방형병원은 전국 8개 경제자유구역에 설립할 수 있습니다. “아직 설립신청이 없다”는 발표는 흘려들읍시다. 지금 신청 안 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없겠냐고요.

녹지병원이 안정되면 추이를 지켜보던 외국자본들이 너도나도 비슷한 형태의 병원을 짓지 않을까요? 이처럼 전국에 외국계 투자개방형병원이 설립돼 영리를 추구하면 분명 역차별논란이 불거질 겁니다. “외국영리병원들은 노골적으로 수익을 내고 진료비까지 높게 받는 데 왜 우리는 막는 거야?”라고요. 국내의료기관이 의료비인상과 영리병원설립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되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영리병원이 높은 진료비에 낮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제 예상시나리오를 알려드리죠.

중국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경제파트너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자본이 영리병원을 짓고 제주도를 잠식한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우리 국민이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네 손을 잡고 친해지기를 원한다)를 중국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거대외국자본이 우리나라에 종합병원을 세웁니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실력있는 국내의료진을 대거 영입하죠. 국내 의료인력부족현상은 차치하더라도 의료수준이 높아진 외국영리병원은 국내의료수준으로 고치지 못하는 질병도 고칠 수 있게 됩니다. 당연히 환자들이 몰리겠죠. 하지만 진료비가 터무니없이 비쌉니다. 결국 서민들은 발길을 돌리고 부유층만이 치료를 받게 됩니다. 바로 ‘의료서비스 빈부격차’입니다.

오해마세요, 이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외국계 투자개방형병원을 통해 외국자본이 심각하게 유입되고 이들의 횡포가 극단적으로 치달았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라는 거죠. 사실 위에서 언급한 의료영리화 역시 녹지병원이 설립됐다고 해서 당장 벌어질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히 실현가능하다는 판단에서 시민단체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거죠.

기독교신자는 아니지만 어릴 적 감명깊게 들었던 구절 하나가 있습니다. 욥기 8장 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평소 제가 항상 되뇌이며 힘을 얻는 이 구절이 이처럼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처음이네요. 의료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잘못을 감시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국민의 눈과 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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