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한미약품, 그래도 신약강국의 꿈은 계속 돼야
사면초가 한미약품, 그래도 신약강국의 꿈은 계속 돼야
  • 박노석 피플앤박 대표
  • 승인 2016.10.11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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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의 8조원대 신약기술수출 쾌거는 지난 한해 대한민국을 들썩이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과거 철강, 조선, 반도체로 성장을 이끌던 대한민국호(號)가 제약, 바이오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급기야는 주식시장에서 한미약품의 시가총액이 LG전자, 포스코를 넘어서기도 했다. 정부와 온 국민이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고 국내산업의 역사를 다시 쓰는 창조경제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1200조원대의 제약, 바이오시장은 자동차시장의 900조원보다 훨씬 시장규모가 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이 분야 시장점유율은 불과 1.6%에 불과하다. 인구 800명만의 스위스가 굴지의 제약회사인 노바티스, 로슈사를 통해 제약강국으로 국부를 창출하고 있는데도 우수한 두뇌가 많다는 인구 5000만명의 우리나라는 이를 넘볼 수조차 없었다.

더구나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의약품이라는 복제약품을 만들어 리베이트에 의존하는 영업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 동안 국내사가 개발한 20여개의 신약은 대부분 국내용 의약품이었다. 글로벌신약개발은 꿈도 꾸지 못하는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박노석 피플앤박 대표

10년 이상의 시간과 한 제품당 최소 50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개발비용, 여기에 성공확률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약개발은 어느 제약사도 도전하기 힘든 분야였다. LG생명과학, 한화드림파마, 태평양제약 등 대기업이 제약산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국은 합병되거나 매각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제약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매년 두 자리 수 이상의 연구개발비용을 투자해 오면서 묵묵히 글로벌 신약개발에 매진해온 한미약품이 드디어 9조원대의 메가 딜(Mega deal)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유수의 세계적 제약회사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개방형 혁신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개발되고 있는 우수한 신약에 대한 모니터링을 한다. 시장성과 기술력을 가진 신약 파이프라인을 탐색해 큰 돈을 주고 그 기술을 도입한다.

그리고 임상과정과 허가과정을 통과한 후 시장에 내놓게 되는 것이다. 임상과정은 매우 복잡해 비임상, 임상1상·2상·3상을 거쳐 각국의 허가청인 한국 식약처, 미국 FDA, 유럽 EMA 등의 최종허가를 받아 시장에서 환자에게 사용되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신약개발은 우리나라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리스크(위험)를 수반하는 선진국형 산업이다.

최근 한미약품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무도 우군이 없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고 사면초가인 상황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지난해 이뤄진 8조원 계약조차 진위여부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계약의 세부조항까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계약금(Upfront)만 해도 최근 제넨텍사에 기술 수출한 항암제를 포함해 5개사에서 8000억원을 받게 된다. 마일스톤(milestone)이라는 임상과 허가과정에서 받는 약 9조원의 계약금 일부를 받지 못한다고 해도 신약기술로 8000억원대의 계약금은 받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일라이릴리, 베링거잉겔하임, 사노피, 얀센, 제넨텍사로부터 받는다. 이는 우리나라 해방 이후 어느 제약, 바이오회사도 하지 못한 대단한 신약개발성과다. 이것이 결코 한미의 신약개발능력 자체를 폄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국의 거대제약사가 신약기술을 도입하면서 수천억원을 지급해야하는 계약서에 사인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이 기간만도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소요되며 모든 자료와 임상데이터를 그 회사 최고의 석학과 연구진이 살펴본 다음 효과, 부작용, 생산가능여부, 특허존속여부 등을 모두 오픈해 검증한 후 계약서에 최종사인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듀-딜리전스(due diligence)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한미약품처럼 거대 글로벌제약사와 듀-딜리전스를 많이 해 본 회사가 없다. 이처럼 험난한 검증과정을 통해 신약기술을 수출한 것이지만 이 많은 과제를 글로벌제약사와 함께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한번도 해본 경험이 없었고 국내 어느 회사도 가본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의 공시문제, 내부정보유출문제, 신약개발에 따른 부작용문제가 마치 쓰나미처럼 밀려온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과 정부, 그리고 회사의 주인이라는 주주들까지 한미약품을 비난하고 있다. 물론 경영과정에서 비롯된 미숙함이나 잘못은 당연히 책임지고 사과해야한다. 하지만 우리가 경계해야할 것은 저성장과 구조조정국면에 들어있는 우리 현실에서 새로운 미래성장동력인 제약, 바이오산업이 꽃피기도 전에 주저앉는 일이다.

지금까지 한미약품이 묵묵히 걸어온 R&D투자를 통한 성과는 인정해야한다. 또한 칭찬하고 응원해야한다. 하지만 이를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빚어진 이번 사태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번 한미사태로 낙담한 국민, 주주, 고객들에게 한미약품의 진정성이 담긴, 책임 있는 사과도 필요하다. 이제 국내외에서 한미약품의 위상은 많이 높아졌다. 그에 걸맞도록 책임지는 자세와 제약회사로서의 숭고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만 비로소 존경 받고 지속성장이 가능한 회사로 도약할 수 있다.

한미약품을 주식시장에서 제약주중 대장주라고 한다. 대장이 흔들리면 군사들은 갈 길을 잃는다. 이젠 흥분을 가라앉히고 좀 더 침착하게 기다리면서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글로벌 신약의 서광이 비쳐오는데 그 싹을 죽여서는 안 된다. 최근 누군가 한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지금 국내 제약, 바이오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우리나라에 제 2의 한미약품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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