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녹내장환자, ‘미소’를 되찾다
말기 녹내장환자, ‘미소’를 되찾다
  • 헬스경향 일산무지개성모안과 동은영 원장
  • 승인 2016.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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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심성 좋아 보이는 아드님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녹내장치료를 위해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에 다니고 계셨고 우리 안과에는 가끔 안압을 측정하기 위해 들르셨다.

녹내장은 만성질환이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안압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치료받는 분들도 안압 측정을 위해 개인의원을 함께 다니는 경우가 더러있다. 수많은 환자들로 붐비는 대학병원에서는 녹내장환자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진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은영 일산무지개성모안과 원장

어느 유명 대학병원의 교수님 한 분은 안압을 기록할 기록지를 환자들께 드리면서 개인의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안압을 기록해 오도록 해 치료에 참고하기도 한다. 그만큼 안압의 변동상황은 중요하며 환자가 안압약을 제대로 잘 넣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사실 1년에 두 번 검사해서 그간의 안압추이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도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더 오랜 시간 진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할머니는 안압조절이 안 되서 좀 더 자주 대학병원에 다니셨다. 할머니의 오른쪽 눈은 만성폐쇄각 녹내장으로 말기였다. 폐쇄각 녹내장은 방수가 흐르는 전방각이 좁아서 안압이 높아지는 병인데 백내장수술을 하면 눈의 공간이 넓힐 수 있다.

사실 대학병원에 다니는 환자 분들이 오시면 개인의원의 의사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게 된다. 대학병원에서 알아서 검사를 잘 해줄 것이라 생각해 환자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할 필요도 없고 그저 원하시는 것만 해드리면 돼 오히려 빨리 진료가 끝난다.

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오실 때마다 안압이 높은데 이대로 뒀다가는 수개월 내 완전 실명할 것이 분명했다. 필자인 나는 이제나 저제나 큰 병원에서 빨리 백내장 수술을 해 안압을 떨어뜨려주기를 바랐는데 이게 웬일인가. 1주 전에 대학병원에 다녀오셨는데 또 수술 얘기는 없고 예약은 3개월 뒤에 잡혀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폐쇄각 녹내장의 백내장수술은 기술적으로 어려울뿐더러 말기 녹내장이라 수술 자체가 위험하다. 수술 중 일시적 안압상승도 견디지 못해 수술 후 바로 실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경우 안압조절이 안 돼 얼마 되지 않아 실명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더라도 수술하는 것이 당연했다. 필자인 나는 이런 위험한 수술은 대학병원에서 처리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수술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주치의가 따로 있는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나? 만일 수술 후 실명한다면 아무리 동의서를 받아도 그건 휴지조각이 될 것이고 보호자와 사돈의 팔촌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고 병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일인 시위 할지도 모를 일인데…….

수술해야 한다고 할까? 수술해달라고 매달려서 해주는 것과 내가 권유하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천양지차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수술을 해야한다고 권하고 있었다. 아직 그렇게 험한 일을 당하지 않아서 좀 용감한 탓도 있었다. 실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수술 당일 아드님에게만 짧게 설명했다.

수술은 잘 끝났고 수술 후 경과도 좋았다. 안압은 항상 낮은 상태로 유지됐고 할머니의 입가에도 비로소 미소가 피어올랐다. 늘 할머니를 그림자처럼 모시고 다니던 아드님은 수술 후 경과가 좋아지자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께 여쭤보니 직장에 다니느라 바빠서 그렇다고 하셨다. 이제야 비로소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수술 후 3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의 시력과 안압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할머니는 다니시던 서울의 대학병원에는 더 이상 가지 않고 근처의 종합병원에 다니신다. 아마도 의원보다는 녹내장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이 더 안심된다는 가족들의 권유가 있었을 것이다.

굳이 필자에게는 오지 않으셔도 될 텐데 한 달에 한 번은 꼭 들르셔 안압검사를 하시고 음료나 과일을 사들고 오시기도 한다. 늘 함박웃음을 지으시는 할머니를 보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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