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특별기고]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 신태식 근로복지공단 재활의료이사
  • 승인 2016.12.2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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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와는 필자가 기획조정본부장이던 2009년 처음 캄보디아 사회보장기금(NSSF)를 방문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는 이미 2005년부터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 8개국 대상 국제협력사업으로 ‘韓-ILO(국제노동기구) 협력사업’을 통해 매년 산재보험 적용, 보상, 요양, 재활 등 산재보험제도 전반에 대한 발전모델을 학습시키고 제도지원 및 행정역량강화에 기여하던 중이였다.

특히 산재보험제도가 없던 캄보디아에는 제도전반에 대한 법제와 행정노하우를 전달했고 캄보디아가 2008년 산재보험제도를 처음 도입하는데 근로복지공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태식 근로복지공단 재활의료이사

캄보디아 사회보장기금청을 방문하면서 1인당 GNP 1000달러도 못 미치는 열악한 경제환경 속에 소외되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학교에 가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 세끼 밥조차 먹을 수 없는 궁핍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필자는 1957년생으로 당시 우리나라 1인당 GNP가 100달러도 안 되는 지구상의 최빈국에서 자랐으며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에서 주는 원조쌀로 우리국민이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었다는 말을 부모님께 들었던 기억이 났다.

필자는 이제 그들에게 우리의 고마움을 갚을 때가 됐다고 생각해 지난해부터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대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내년부터는 라오스, 미얀마 등 더 많은 동남아 개발도상국가로 확대할 예정이다.

처음 해외봉사를 구상할 때 가장 역점을 두고 기획했던 것은 무엇보다 그동안 민간봉사단이 해왔던 것과는 달리 차별화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10여년 동안 ‘한국근로문화예술봉사단’을 운영하면서 문학적·예술적 재능이 있는 근로자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희망을 전하는 봉사를 해왔다.

2004년부터 여주교도소, 청주여자교도소, 김천소년교도소, 안양소년원, 원주상애원, 군포 효콘서트, 병원희망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콘서트를 통한 경험을 살려 ‘K-WACO. Korea Worker’s Art & Culture Corps‘으로 재구성해 K-POP의 열기와 트렌드에 합류하면서 음악공연과 함께  ‘무료진료’ ‘헤어커트’ ‘예술작품기증’ ‘식사 및 선물제공’ 등을 주요봉사내용으로 정했다.

 

지난해에는 캄보디아 캄퐁참의 뜨봉끄멈초등학교와 시앰립의 톤레샾호수에서 음악공연과 함께 빵, 학용품, 옷가지 등을 선물했고 점심봉사를 함께 했으며 올해는 소아과, 내과의사와 간호사, 헤어디자이너까지 합류해 더욱 풍성한 봉사를 할 수 있었다.

아직도 머리에 이가 있는 아이들, 이제 갓 50세인데도 퇴행성 및 노인성질병에 시달리는 그곳 주민을 보면서 봉사자들은 너무 빨리 헤어짐을 아쉬워했고 내년에는 더 많은 보따리를 들고 다시 오고 싶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韓-ILO 협력사업’은 꾸준히 계속됐고 우리나라는 2010년 ’아시아산재보험포럼‘이라는 국제기구를 출범하면서 사무국가의 지위로 동남아시아 산재보험제도의 정착과 발전에 주도적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됐다. 이 기구는 1992년 로마에서 설립된 ’산재보험 유러피안포럼‘을 모델로 했으며 현재 회원국으로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비롯해 몽골, 라오스, 태국,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9개국이 있다.

필자는 2010년 7월 서울에서 개최한 창립총회와 제1회 국제세미나인 ’산재보험 아시안포럼‘에서 ’한국산재보험학회‘ 수석부회장 자격으로 좌장을 맡아 포럼회원국 기관과의 학술적 교류 및 근로복지공단의 글로벌 리더십을 재확인하고 산재보험 리더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이번 캄보디아봉사를 다녀오면서 느낀 점이 참 많았다. 처음 계획을 수립하면서 캄보디아정부의 협조를 구해야했고 이 과정에서 저소득국가인 캄보디아 고위공무원들의 부패와 비리에 많은 우려를 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지금까지 오크 삼비지아 사회보장기금청장의 순수한 마음과 그곳 공무원들의 한결같은 협력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캄보디아를 잊지 않고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 NSSF의 순수한 협력정신과 정직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람의 인생처럼 국운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강할 수도 약할 수도 있다. 오늘날 많은 선각자들은 세계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과거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왔듯이 이제는 그 흐름이 조금씩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다. 아시아의 선진국가로서, 아시아의 리더국가로서 대한민국이 더 이상의 혼란과 무질서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보다 많은 나라의 빛과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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