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걸린 반려동물도 마취할 수 있을까?
심장병 걸린 반려동물도 마취할 수 있을까?
  • 헬스경향 VIP동물의료센터 서상혁 원장
  • 승인 2017.01.1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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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소위 ‘반려동물 붐’이 시작된 때는 IMF를 지나 경기가 다소 풀리기 시작한 2002년 월드컵 때였다.

당시에는 동물병원에서 노령견, 노령묘는 거의 찾기 힘들었고 한두 살의 어린 반려동물이 주를 이뤘으며 하루진료시간의 대부분을 백신접종에 보내곤 했었다.

필자 역시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수의사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며 ‘반려동물 붐’과 함께 호흡하면서, 또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수의사로 성장했다.

서상혁 VIP동물의료센터 원장

2002년 ‘반려동물 붐’은 수의사로서 개인적인 성장뿐 아니라 동물용품업계, 수의학계, 사료업계, 의약업계 등 동물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즉 국내에서 반려동물문화가 시작되고 발전한 매우 중요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지금, 당시 태어났던 예쁘고 사랑스럽던 반려동물이 이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다. 그들의 성장과 노화에 발맞춰 수의학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필자가 동물의 심장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시점이 7년 전이었으니 반려동물이 중년으로 접어드는 7~8살 무렵이다.

동물은 사람보다 삶이 짧은 만큼 노화속도도 빠르다. 보통 동물의 7~8살이 사람으로 치면 약 50세 정도. 막 노령성질환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반려동물의 노화에 발맞춰 수의학계에서도 노령질환의 진단·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심장병, 신부전, 대사성질환, 종양 등 노령동물의 질병을 관리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많은 학술발표, 세미나가 주를 이뤘다.

내과뿐 아니라 외과영역에서의 변화 역시 눈에 띈다. 내과에서는 노령성질환의 진단과 치료적 관점에서 발전이 있었다면 외과영역에서는 노령견, 노령묘수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즉 나이 들어 병이 생긴 동물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마취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이다. 각각의 질병상태에 따라 마취프로토콜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뇌질환, 신부전, 심장병, 호르몬질환 등 각각의 질병에 따라 사용되는 마취약물과 마취방법이 확연히 다르게 진행된다.

종종 병원에서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을 접하게 된다. ▲복강 내의 종양은 커지는데 심장병이 있어 마취가 부담돼 수술을 미루다가 이미 전신으로 종양이 전이돼 손쓸 수 없게 된 경우 ▲ 자궁에 염증이 있어 수술을 권했지만 역시 마취부담으로 수술을 결정하지 못하다 자궁축농증으로 진행돼 수혈까지 진행한 경우 ▲심한 치주염으로 인한 치통으로 저작곤란이 있어 삶의 질이 저하됐지만 마취가 무서워 남은 삶 동안 평생 치통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심장병환자도 심장병 1기인 동물과 심장병 4기인 동물의 마취방법이 너무나도 다르다. 심장병 상태에서는 심장의 수축력과 혈압조절능력이 떨어지고 혈액순환도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마취 시 그 위험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심장병의 진행정도에 따라 심근수축력, 혈압, 심박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밀하게 검토해 마취약물을 선택하고 마취프로토콜을 정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마취라 하면, 주사마취냐 호흡마취냐 정도로 마취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반려인들이 많이 있는데 마취란 주사약물 하나 또는 가스약물 하나로 진행되지 않는다.

심장병의 경우 마취가 이뤄지기 전 ‘전마취’라고 하는 약물이 최소 3~4개 정도 주입되는데 이는 마취약의 농도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게 해주고 마취에 따른 합병증을 예방해준다.

이후 ‘도입마취’ 약물이 주입되고 나서 본격적인 ‘마취약’이 주입된다. 또 마취 중에도 반려동물의 모든 신체지수가 모니터링되며 신체변화에 따라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약물이 활용된다.

따라서 각각의 질병에 맞춘 충실한 마취모니터링 및 마취프로토콜 적용을 통해 신체변화를 보완하기 때문에 이제는 심장병이 있어도 마취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진료하다 보면 “우리 반려동물은 심장병이 있어서 마취가 불가능해요”라고 말하는 보호자를 종종 만난다. 물론 심장병이 있는 경우 마취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노화에 발맞춘 수의학 발전 역시 충분하다고 자부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반려동물의 평균수명을 12~13세로 규정했지만 지금은 17~20세의 건강한 반려동물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최근 10년간의 수의학 발전은 반려동물의 평균수명을 30% 이상 연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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