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판치는 전문병원…갈길 잃은 환자들
‘짝퉁’ 판치는 전문병원…갈길 잃은 환자들
  • 이보람 기자
  • 승인 2013.03.20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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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허위·과장 광고 수두룩…혼란 가중
팔짱 낀 보건당국 “규제 힘들다” 수수방관
수도권·특정진료 쏠림현상도 활성화 발목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막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11년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전문병원’제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래 취지와 달리 전문병원제도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문’이라는 용어에서 오는 혼란과 과도한 마케팅으로 인한 인식의 혼선 때문. 과거 의료계에서는 병원 운영을 위해 ‘전문’이라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이에 따른 용어의 친숙함으로 인해 진짜 전문병원들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강준 사무관은 “1960년부터 병원들이 운영을 위해 ‘전문’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온 것이 아직까지 상당부분 남아있는 상황이고 더욱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제도화되다보니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광고·인터넷이 진짜‘전문병원’밀어내

병원들의 과도한 마케팅도 심각한 문제다. 실례로 유명 스포츠스타를 내세워 지하철과 버스는 물론 옥외광고까지 점령한 모 네트워크병원은 막대한 홍보비 지출이 아깝지 않을 만큼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공격적인 홍보로 인해 이 병원에 대한 인지도가 상당히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병원은 사실 보건복지부가 인정한 전문병원이 아니다. 자세히 광고를 살펴보면 유명스타 사진과 질환명, ‘000치료는 00병원’이라는 단순한 문구만 새겨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병원광고를 보는 대중은 ‘저 병원이 전문병원이고 진료도 잘하겠지…’라고 인식한다. 법이 인정하는 전문병원과 대중이 인식하는 전문병원은 이처럼 현실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인식의 혼란은 인터넷에서 더욱 심각하다. 최근 많은 연예인들이 수술 받아 이슈가 되고 있는 양악수술을 검색해보니 ‘전문’‘지존’‘황금비율’‘유명한’ 등 감각적인 단어가 판을 치고 있었다. 한술 더 떠 자유롭게 병원홍보를 할 수 있는 블로그와 게시판은 그야말로 가짜가 진짜를 밀어낸 세상이었다. 사실 양악수술을 비롯한 성형 관련 진료과목들은 보건복지부가 인정하는 전문병원 진료과목에 포함돼 있지도 않고 양악수술 전문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병원들은 왜 인터넷 마케팅에 열을 올릴까. 취재 중 기자를 만난 허모(29·여·서울시 광진구) 씨는 “병원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인터넷검색과 광고”라며 “아무래도 전문이나 첨단 같은 단어가 있으면 정말 진료나 수술을 더 잘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고 광고도 자꾸 보다보면 ‘정말 잘하는 병원이려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실이 이런데도 관계당국의 대응은 미지근하다. 보건복지부는 전문병원제도 시행 후 전문병원이 아닌 병원에서 전문이나 이와 유사한 단어를 병원홍보에 사용하면 ‘위법’이라는 사실을 홍보하고 있지만 ‘광고규제’외에는 규제방법이 없어 발만 구르고 있다. 관계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국민들은 병원홍보로 도배된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병원을 선택한다. 국민도 전문병원도 모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밀집·특정진료 쏠려 경쟁력 상실

가짜 전문병원 득세도 문제지만 수도권과 특정진료과목에 한정된 전문병원 지정도 전문병원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

현재 전문병원이 가장 많은 곳은 서울로 27개 병원이 지정됐다. 경기도(15곳). 부산(12곳), 대구(11곳) 등이 뒤를 잇고 있었다. 충남·강원·제주 등에는 전문병원이 겨우 1곳에 불과했다. <3면 표 참조>

수도권 밀집현상과 함께 특정진료 쏠림현상도 전문병원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21개 진료 분야 중 척추 17곳, 산부인과 13곳, 관절 10곳, 재활의학과 10곳 등 특정진료에 치중돼 있다. 반면 심장, 신경과, 신경외과, 유방과는 단 1곳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문병원들의 수익과 시장점유율은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박은철 교수가 연구 발표한 ‘전문병원 지정·평가 개선연구’결과에 따르면 전문병원 지정 전 병원별 평균 입원환자는 4783명으로 전문병원 지정 후 평균 입원환자인 4984명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전문병원 지정 후 시장점유율도 5.9%에서 5.2%로 오히려 감소했다.

현장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병원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의료의 질’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전문병원에 대한 기준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박용덕 정책위원은 “다른 소비재와 달리 의료서비스는 정보비대칭이 심하고 구매자(환자)보다 판매자(의료인)에게 더 힘이 실리다보니 제대로 된 정보제공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문병원이 좀 더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제도 확립을 위해선 전문병원의 의료서비스 질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도록 기준이 엄격해지고 객관적으로 검증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국민에게 전문병원을 제대로 홍보하기 위해서는 전문병원과 일반병원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 전문병원 지정만 받아도 많은 혜택을 받게 해야한다”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의료기관과 의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안전한 통로가 확보돼야 하는데 헬스 관련 미디어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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