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도 당뇨병 앓는 세상…누가 만들었나?
반려동물도 당뇨병 앓는 세상…누가 만들었나?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2.25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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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병원응급실에는 한눈에 보아도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애견이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 올해로 11살 된 미니어쳐핀셔 종 애견 ‘바니’는 일어날 기운조차 없는 듯 누운 자세 그대로 구토를 하고 있다. 그 순간 갑자기 바니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부들부들 온몸을 강하게 떨기 시작했다. 지금 바니는 전신경련 상태로 이 경련이 지속되면 목숨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위급한 상태다.
 
다행히 경련은 얼마 후 멈췄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다시 경련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바니의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신속히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진들이 즉각 바니의 코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카테터를 앞다리에, 정맥에는 수액과 함께 각종 응급약물을 투약할 수 있는 정맥카테터를 장착했다. 동시에 뒷다리 동맥과 목의 정맥에서는 혈액검사를 위해 혈액을 채취하고 소변검사를 위한 소변도 채취해 즉시 검사에 들어갔다.
 
잠시 후 검사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수의사가 필자에게 바니의 검사결과를 짧고 간결하게 보고한다. “교수님, 케톤성 당뇨입니다. 현재 혈당수치가 아주 높고 뇨에서도 케톤이 검출됩니다. 산증(酸症)지수도 높아 빨리 교정해 주어야 될 듯합니다.” 의료진들의 손놀림이 다시 빨라진다. 즉시 산증 교정을 위한 수액과 약물이 투여되고 혈당수치를 낮추기 위한 인슐린도 투여된다.
 
응급처치를 마치고 필자는 바니의 가족들에게 “바니는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은 게 아니라 당뇨성 백내장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했고 당뇨병이 그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응급한 상태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난 늦은 오후 드디어 바니는 구토와 경련을 멈추고 혈당수치도 목표수치 이하로 안정됐다. 조금씩 기운을 차린 바니는 이제 스스로 고개를 들어 킁킁거리며 주변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아마도 평소와는 다른 낮선 냄새 속에서 가족들의 채취를 찾는 듯해 보인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초초하게 대기 중인 바니의 가족들이 바니 앞에 도착하고서야 바니는 안심한 듯 다시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응급처치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바니가 오래전부터 당뇨병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 드렸다. 또 나이가 들어 시력을 잃은 게 아니라 당뇨성 백내장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했고 당뇨병은 그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오늘과 같이 응급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음도 설명했다.
 
유전적 소인도 크게 작용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서구화된 식습관과 비만 및 운동부족 등의 여러 후천적 요인에 의해 당뇨병 발병이 증가되고 있다.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들도 사람과 같이 당뇨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려동물들의 당뇨병 또한 인간의 당뇨병과 거의 모든 점에서 일치되는 경향을 보인다.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먹기만 하고 운동량이 이에 미치지 못해 성인병과 같은 당뇨병이 발병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생활패턴을 반려동물이 답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의 당뇨병과는 달리 개와 고양이에서 주로 발생되는 인슐린의존성 당뇨병은 아직 정확하게 발병의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육류와 탄수화물을 위주로 한 식습관에 운동량이 부족한 비만한 반려동물인 경우에는 당뇨병 발생률이 높을 뿐 아니라 인슐린투약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들도 평소 적절한 운동을 통해 비만해 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지나친 육류위주의 식습관을 피하고 특히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빵과 설탕을 넣어 제조된 가공식품의 섭취를 금기시 할 필요가 있다.
 
당뇨병 발병 초기의 반려동물들은 물을 많이 먹고 소변량이 증가돼 활동량이 줄어들어 털에 윤기가 사라지고 체중이 줄어드는 특징적 증상들이 나타나게 된다. 만약 이러한 증상만 나타나는 초기 당뇨 시에는 인슐린 요법과 아울러 식이요법 (주로 탄수화물 비중을 줄이고 섬유질을 높인 음식을 직접 조리해 주거나 시판되는 수의사 처방사료를 이용하면 된다)과 운동요법을 실시하면 대부분 혈당이 잘 조절되게 된다. 그러나 조기 치료와 관리에 실패하고 또 진단이 늦어지게 되면 바니와 같이 심각한 케톤성 당뇨로 이환되거나 당뇨성 백내장으로 시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에서도 당뇨병은 한번 발병하게 되면 완치를 기대하기 힘든 무서운 질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평소 꾸준하게 올바른 식습관을 유지하고 적절한 운동을 통해 비만을 예방한다면 분명 당뇨병 발생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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