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도 허리디스크에 걸릴 수 있다
반려견도 허리디스크에 걸릴 수 있다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3.04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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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병원의 일상적인 풍경은 소아과병원과 유사한 점이 많다. 소아과병원의 환자대기실에 말 못하는 어린 자녀와 내원한 부모들이 있다면 동물병원 역시 말 못하는 반려동물과 동행한 보호자들이 진료차례를 기다린다. 소아과병원에서 아이들이 재잘거리고 우는 것처럼 동물병원도 ‘멍멍’ ‘야옹야옹’ 소리로 소란스러울 때가 있다.

오늘도 아픈 동물로 가득한 대학병원 진료대기실 한쪽에서 반가운 얼굴이 필자를 반긴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엉덩이에 흰색기저귀를 차고 병원에 내원한 닥스훈트종 애견 ‘깜비’가 앞발을 동동거리며 고개를 들어 힘차게 짖어댄다. 개라면 응당 반가운 사람에게 달려와 연신 꼬리치며 애교 부려야 하지만 깜비는 지금 필자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깜비는 갑작스런 복통과 구토, 탈진증세로 응급실에 왔다. 아직 젊고 그동안 별다른 병치레가 없었기에 이런 깜비의 증상은 가족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우선 복통과 구토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가족들에 의하면 평소 이것저것 이물을 주워 먹는 습관도 없고 마지막으로 준 음식도 평소 주식으로 먹던 사료였다. 개에서 가장 흔하게 구토를 일으키는 이물섭취와 췌장염, 식이성위장염 등은 우선 가능성이 낮아보였다.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닥스훈트종 애견에서는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를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사진제공=황철용 교수)

의료진은 잔뜩 웅크린 자세로 누워만 있는 깜비를 진찰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으켜봤다. 순간 깜비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엉덩이에 손을 올리고 있던 수의사의 손을 물어버렸다. 이 행동으로 하복부 쪽에 극심한 통증이 있음을 알게 됐다. 어린아이처럼 어디가 아픈지 결코 말해 주지 않는 동물의 경우 이런 식으로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진료 결과 깜비는 우리가 흔히 디스크라고 부르는 ‘추간판탈출증’으로 진단됐다. 추간판탈출증은 척추뼈 사이 완충물이 제자리에서 튀어나와 주위신경을 압박하는 질환으로 허리 쪽에 발생하면 요통과 함께 심하면 하반신마비가 나타날 수 있다. 이미 깜비는 그 정도가 심하고 하반신마비로 인해 일어설 수도 없었고 자발적 배뇨도 불가능해 요독증까지 온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요독증으로 목숨을 잃었거나 평생 하반신불구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다행히 깜비는 요독증에 대한 처치를 무사히 마쳤을 뿐 아니라 튀어나온 추간판을 제거하는 수술도 무사히 끝냈다. 오늘은 수술 후 차츰 회복돼가는 하반신마비증에 대해 물리치료와 침치료를 받으러 다시 병원에 내원한 것이다. 비록 자발적인 배뇨가 아직 원활치 않아 귀저기를 차고 온 조금은 민망한 모습이지만 곧 해방될 것이다.

흔히 인간과 같은 직립보행동물에서만 추간판탈출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놀랍게도 네발 달린 개에서도 이 질환은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특히 깜비 같은 닥스훈트종과 페키니즈, 코커스패니얼종에서는 다른 견종에서 보다 그 발생이 잦은 편이다. 따라서 이들 견종과 함께 생활하는 경우 추간판탈출증을 예방하기 위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개에서 추간판탈출증은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닥스훈트 종처럼 대부분 해부학적 결함에 의한 선천적 위험인자가 주요 발생원인이지만 비만, 과도한 움직임 등 후천적 요인이 질병의 시작을 앞당기고 증상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발생위험도가 높은 견종에서는 식이조절을 통해 비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침대와 소파에 올라오는 행위 등 허리에 가해지는 힘이 큰 행동이나 급격한 움직임도 자제시켜야 한다.

개를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은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하다. 애견은 침대나 소파에 올라가기 위해 도움닫기를 힘차게 하는 행위와 선천적으로 왕성한 식욕이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 있음을 결코 알지 못한다. 반려동물은 모든 면에서 사람의 보살핌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 건강하고 행복한 반려동물은 우리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통해 가능함을 잊지 말자.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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