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3.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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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의 하루 일과는 밤새 입원한 동물들의 상태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된다. 수의사들은 자신들이 담당한 동물들이 밤사이 건강 변화가 없는 지를 살핀 후에는 대부분 입원동물이 머무르는 입원케이지를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람과는 달리 동물들은 낯설고 제한된 공간인 동물병원 입원케이지 안에서 대소변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입원한 동물들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동물병원 업무 중 하나이다. 어느 정도 청소가 마무리 되면 이제는 첫 아침을 먹어야 하는 동물들을 위해 맞춤식을 준비하게 되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진료실 전체에 생소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생소한 그 냄새를 따라 진료실 한쪽 전자레인지가 위치한 곳으로 가보니 내과 여(女)수의사 선생이 환한 웃음으로 냄새에 대한 답을 해 준다.


 
“범호에게 오늘 드디어 첫 유동식을 줘 볼까 합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드디어 고양이 범호가 병원에 입원한지 3주 만에 자신의 입으로 유동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방금 막 전자레인지에서 꺼낸 그릇에는 김이 몽글몽글 올라온 갈색 된장 같은 음식이 담겨져 있었다. 색깔은 그렇지만 고소한 냄새가 꽤나 식욕을 자극한다.
 
범호는 3주 전 심각한 구토증으로 동네병원에서 치료 중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으로 진료 의뢰된 8살 된 황색에 빗살무늬가 선명한(그래서 이름이 호랑이 인가 보다) 토종 수컷 고양이로 내원 당시 구토증으로 인한 탈수증과 전해질 불균형이 심했고 황달로 인해 눈과 피부 모두가 노란색이었다.
 
한 살 때 중성화 수술을 받은 이후 점점 살이 올라 비만했지만 활달하고 특별한 잔병 없이 잘 생활하고 있던 고양이였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중한 상태에 가족들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범호가 앓고 있는 질환은 고양이지방간증(Feline Hepatic Lipidosis)으로 불리는 질환으로 고양이에서는 비교적 발생이 흔한 간(肝) 질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 원인이 알려지지 않았고 범호와 같이 비만한 고양이에서 발병률이 상대적으로 정상 고양이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즉 비만한 고양이가 이런 저런 원인으로 하루 이틀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면 몸속에 축적된 지방들이 간을 거쳐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 위해 대사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일정기간 지속되면 지방성분들이 간세포 내에 다량으로 축척돼 간 손상을 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비만한 고양이가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이틀 이상 먹이를 스스로 먹지 않으면 지체 없이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고양이지방간증은 사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실시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환이다. 반면 초기에 질환을 발견하고 식이요법을 동반한 적절한 치료를 실시하면 회복될 확률이 높은 질환이지만 치료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우선 지방간증을 보이는 고양이는 끊임없이 구토증을 보이며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코를 통해 위까지 장착한 카테터를 통해 매일매일 필요한 영양소와 칼로리를 함유한 특수 음식을 하루에도 몇 번씩 급여해 줘야한다.
 
문제는 고양이마다 구토증 양상이 다르고 음식물의 단백질 함유량이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간성혼수(간에 이상이 있는 경우 단백질 대사로 발생된 암모니아를 간에서 중화하지 못해 발생함)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카테터를 통해 공급하는 특수 음식을 상태에 따라 매번 조정해야 한다.
 
범호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범호는 입원 후 3주 동안 구토와 간성혼수로 인해 식이요법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히 구토가 사라지면서 음식을 담은 그릇을 앞에 갖다놓으면 냄새를 맡기도 했다고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소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묘한 냄새의 그 음식을 사기그릇에 담아 범호 앞에 가져다줬다. 잠시 머뭇거리던 범호는 입원케이지 바깥쪽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수의사들을 힐끗 올려 보다가 정말 맛나게 그 음식을 먹어치웠다. 이것으로 담당 수의사들이 3주간에 걸친 고생도 끝이 났다. 스스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그 음식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담당 여 수의사에게 비법을 전수받아야겠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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