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견 괴롭히는 ‘뇌수두증’
소형견 괴롭히는 ‘뇌수두증’
  • 헬스경향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4.0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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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실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어제 늦은 밤 지속되는 경련으로 인해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내원한 치와와 ‘땅콩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내과 수의사들과 함께 영상의학과와 마취과 수의사들이 자신이 맡은 임무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수행하고 있다.

내과, 마취과 진료진들은 호흡마취기로 마취돼 눈을 감고 개구리 자세로 검사대에 누워있는 땅콩이가 호흡과 심장박동이 안정적인지 살피고 있고 영상의학과 의사들은 미리 촬영해 둔 땅콩이의 머리 부분 방사선 사진을 참조하며 어떤 조건으로 MRI를 촬영할 것인지를 논의 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영상의학과)
마침내 촬영준비가 모두 끝나고 진료진 모두가 방사선 피복을 피하기 위해 촬영실에서 물러났다. 이제 촬영실에는 땅콩이가 마취된 채 홀로 MRI 촬영 테이블 위에 누워있다.
 
“시작하겠습니다.” MRI 촬영실 바로 옆방에서 땅콩이의 모습을 유리창 너머 치켜보고 있는 진료진들이 순간 더욱 긴장한다. 윙윙 소리를 내며 땅콩이가 누워있는 테이블이 원격 조정되어 천천히 MRI 촬영기 속으로 들어간다. 
 
“심박, 호흡 모두 문제없습니다.” 마취과 진료진의 판단이 나오자 영상의학과 진료진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원격조정기를 조정해 본격적으로 MRI 촬영을 시작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촬영된 영상들이 큰 두 대의 모니터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굴 앞쪽부터 시작해 목으로 진행된 촬영 순서대로 하나하나 세밀하게 나타나는 영상들을 차분히 지켜보다 일순 진료 진들 사이에서 탄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땅콩이 뇌 중앙부 영상에서 왜 이 젊은 치와와 종 애견이 경련을 지속하며 의식을 잃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이상이 마침내 발견 된 것이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동물의 뇌에는 뇌 척수액으로 채워진 뇌실이라는 구조가 있다. 뇌실에 채워진 뇌 척수액은 뇌실과 중추신경계를 순환하다 최종적으로는 혈액으로 흡수되게 된다. 정상적으로는 새로 생성되는 뇌 척수액과 순환한 후 흡수되는 뇌 척수액의 양이 균형을 이루어 항상 뇌실에는 적당한 량의 뇌 척수액이 채워져 있게 된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이 뇌 척수액의 흐름이 막히거나 생성과 흡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뇌실내부에 과도하게 뇌 척수액이 채워지게 되어 주변 뇌 조직을 압박하고 뇌압이 상승하게 되는데 이를 ‘뇌수두증’이라 한다.
 
아직 두 돌을 채 넘기지 않은 치와와 땅콩이의 뇌실은 MRI 촬영결과 과도한 뇌 척수액으로 인해 심하게 확장돼 있을 뿐 아니라 확장된 뇌실로 인해 주변 뇌들도 압박돼 변성이 일부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사실 개와 고양이의 뇌수두증은 두부손상이나 감염에 의한 염증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후천적 원인에 의한 경우는 드문 편이며 주로 땅콩이와 같이 사과처럼 둥근 머리와 주둥이 길이가 짧은 치와와나 포메라이언, 시츄, 몰티즈과 같은 소형견에서 선천적인 뇌구조 이상으로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MRI 촬영을 끝낸 땅콩이는 다시 내과 집중치료실로 옮겨져 뇌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과 지속되는 경련을 진정시키기 위해 항경련제를 계속해서 투약 받고 있다. 산소가 자동적으로 공급되고 습도와 온도가 일정하게 조절되는 박스 형태의 중환자 관리 케이지 속에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있는 땅콩이는 깨어나더라도 앞으로 평생 뇌 척수액 생성을 억제하는 약물과 항경련제를 복용해야만 한다. 몸집도 너무 작아 넘쳐나는 뇌 척수액을 복강 내로 보내는 가느다란 튜브를 삽입하는 수술 시도도 이미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땅콩이가 입원한 케이지 유리문에는 벌써 응원의 글들이 적혀지기 시작했다. ‘사과머리 얼짱, 파이팅!’ ‘경련은 이제 그만....나도 집에 가고 싶어!’ ‘힘내자! 땅콩, 아자아자!’ 진료진들의 바람대로 ‘땅콩이’의 쾌유를 함께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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