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견 ‘항문낭’ 관리 잘하고 있나요?
애견 ‘항문낭’ 관리 잘하고 있나요?
  • 애견 ‘항문낭’ 관리 잘하고 있나요?
  • 승인 2013.04.1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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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오후, 모처럼 따뜻한 기운에 점심을 먹고 우리 집 아프간들과 함께 동네 산책에 나섰다. 그동안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봄소식을 느끼지 못했지만 벌써 아파트 단지 내 화단이나 흙이 있는 동네 공터 이곳저곳에는 이름 모를 잡초들이 제법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돌고 주택가를 지나 자주 오지는 않지만 오늘은 날도 따듯하니 얕은 야산이 있는 입구까지 산책길을 연장했다. 한참을 돌아보다 체육공원으로 올라가는 본격적인 야산 등산로 입구에 다다른 후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뒤에서 아주머니 한분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 1층 집 아이들이군요.” 우리 가족을 알아봐 주시는 그 아주머니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순간 아주머니의 품속에서 귀여운 몰티즈 한 마리가 궁금한 듯이 고개를 내민다.
 
희고 복슬복슬한 털에 까만 눈과 코가 대비돼 아주 귀여운 표정을 지은 ‘사랑이’는 여고생 단발머리처럼 얼굴 미용을 한 올해 갓 한 살을 넘긴 암컷 몰티즈였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아주머니는 한 달 전 우리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 오셨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개들을 보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랑이’를 어찌된 영문인지 아주머니는 품속에서 놓아주지 않는다. 맨흙바닥에서는 흙이 묻어 흙속 병균이 옮을 수 있고 집에 들어가게 되면 불편하니 아예 땅을 밟게 해 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이 좋은 날 사랑이도 분명 걷고 싶어 할 것이고 그게 더 건강에 좋다고 말씀드리니 미심쩍은 눈치지만 그제야 사랑이를 땅에 내려놓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품속에서 땅으로 내려온 사랑이는 연신 신이 난 듯 폴짝폴짝 뛰면서 자신 보다 덩치 큰 아프간하운드와도 속도를 맞추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잘 걷던 사랑이가 갑자기 땅에 코를 박고 킁킁대며 냄새를 맡더니 그만 대변을 그 자리에서 봐 버린다.
 
“아니 집에서 분명 대소변을 보고 나왔는데 여기서 또 대변을 보네. 사랑이가 오늘 평소 안하는 짓을 오늘 하네.” 불편한 표정으로 사랑이 대변을 처리할 무언가를 찾으시는 아주머니에게 우리 개들을 위해 준비한 배변처리 봉투를 건네 드렸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배변처리 도구로 인해 아주머니가 아주 당황한 것도 잠시 이번에는 배변을 마친 사랑이가 항문을 땅에 비벼대는 행동을 시작했다. 순간 아주머니는 사랑이를 다시 번쩍 들어 올려 엉덩이를 때리며 엉덩이 주위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사실 사랑이의 행동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아니라 지극히 개라면 정상적인 행동일 뿐이다. 단지 배변 행위를 한 후 땅에 엉덩이를 비벼대는 행동은 행동교정을 요하는 행위가 아니라 건강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한다.
 
늑대에서 진화된 개는 항문주위 양쪽으로 특유의 채취가 나는 액을 분비해 저장하는 항문낭이라는 독특한 기관을 가지고 있다. 평소 이 항문낭액은 배변 시 대변에 섞여 조금씩 묻어나오게 되는데 개들은 각 개체별로 이들 냄새가 미세하게 달라 자신을 인식시키는 도구로 활용하려는 늑대적인 습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랑이도 이날 배변 행위를 통해 자신이 돌아본 영역에 자신의 냄새를 묻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했을 뿐이다.

애견은 주기적으로 항문낭을 짜 줘야만 한다. 
하지만 사랑이와 같이 현대사회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애견에서는 서열싸움이나 영역다툼도 할 필요가 없어져 일상적인 배변행위 때 약간 묻어 나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항문낭액을 따로 배출해 낼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따라서 항문낭이 항문낭액으로 가득차 배출할 수 없게 되면 개들은 이들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 위해 자신의 입으로 항문 주위를 핥거나 항문을 땅에 비벼대는 행동을 하게 된다. 

항문낭은 분명 애견이 인간과 생활을 한 이후로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기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주인들이 매번 주기적으로 엄청나게 강한 냄새를 감내해 가면서 짜 주지 않으면 곪아서 염증이 발생할 수도 있는 무척 성가신 존재가 됐다.
 
분명 진화론적 관점에서 예견컨대 수 백 년이 지나면 아마 이 항문낭은 개의 몸에서 퇴화되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수 백 년 아니 수 천 년 이후 예상되는 상황이니 지금 당장은 우리 집 멍멍이들 항문낭 위생 관리에 좀 더 신경 써 주도록 하자.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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