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콩 통해 본 인간생존 본능
누에콩 통해 본 인간생존 본능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4.05 1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프리카에는 낫모양적혈구 빈혈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원래 적혈구는 원반처럼 생겨야 하지만 돌연변이로 인해 적혈구가 낫 모양으로 변한 게 바로 낫모양적혈구 빈혈증이다. 이 경우 적혈구가 원래 기능인 산소운반을 잘 못해서 빈혈이 일어나는데 이런 유전병이 아프리카에서 많은 이유는 말라리아 때문이다. 
 
말라리아는 적혈구 안에 살면서 적혈구를 파괴하는 기생충으로 원반 대신 낫모양으로 변한 적혈구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또 이 적혈구는 말라리아 병원체가 몸 안에서 증식하지 못하게 막아 준다. 빈혈은 좀 있을지언정 말라리아로 인해 죽진 않게 해주니 이런 유전자가 아프리카에서 유행하는 건 이해가 간다.
 
샤론 모알렘이 쓴 ‘아파야 산다’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질병 유전자가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 우리를 생존할 수 있게 도와줬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만병의 근원인 당뇨병도 빙하기를 견뎌내는 데 큰 도움을 줬는데 추운 지방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갈색지방이 포도당을 가져다가 열로 바꾸니 혈당이 높은 게 당연히 유리하다. 우리가 살을 빼기 어려운 것도 오랜 세월의 굶주림을 견디게 해준 유전자 덕분이듯 말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전공을 살려 기생충 얘기는 없나 찾아봤더니 역시 있었다. 말라리아와 연관된 것으로 누에콩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과거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누에콩을 조심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도 ‘누에콩은 자제하는 게 좋다’라고 한 걸 보면 누에콩에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 뭔가는 바로 소위 잠두중독증으로 누에콩을 먹으면 급성 빈혈에 걸릴 수 있는데 치료하지 않으면 신부전을 일으켜 사망하기까지 이를 수 있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잠두중독증을 일으키는 사람은 G6PD라는 효소가 결핍돼 있는데 전 세계에서 4억명 가량이 이 효소가 없다고 한다. 전체 인구를 50억으로 잡으면 10%에 가까운 수치로 그리 드문 병은 분명 아니다.
 
G6PD는 적혈구의 파수꾼이다. 적혈구를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유리기라는 건데 G6PD가 없으면 유리기가 마음껏 적혈구를 유린하고 결국 적혈구의 세포막이 터져 버린다. 누에콩은 유리기의 아이콘이라 할 과산화수소수를 발생시키는 음식으로 G6PD가 없는 사람이 누에콩을 먹으면 적혈구가 다 터져 빈혈이 생기는 거다. 희한한 것은 이 효소가 결핍된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은 애꿎게도 누에콩이 가장 활발히 재배되는 곳인 북아프리카와 남유럽이다.
 
대체 이곳에는 왜 G6PD가 결핍된 사람이 많아진 걸까. 이곳이 말라리아가 유행하는 지역이라는 게 이유다. 즉 G6PD가 결핍된 사람의 적혈구는 유리기의 지속적인 침범을 받는지라 표면이 무지 지저분한데 말라리아는 깨끗한 적혈구를 선호하는지라 G6PD가 결핍된 사람의 적혈구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즉 G6PD 결핍은 낫모양적혈구 빈혈증이 그랬던 것처럼 말라리아로부터 보호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비록 누에콩을 먹지 못해도 말라리아에 걸려 바로 죽어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듯하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유전자를 바꾸고 누에콩을 심는 걸 보면 말라리아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