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안경 ‘렌즈’가 원래 콩 이름이었다?
[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안경 ‘렌즈’가 원래 콩 이름이었다?
  • 헬스경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7.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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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이름은 보통 색깔이나 효능, 생태학적 특징에 따라 붙여진다. 무생물도 모양이나 쓰임새 등에 의해 이름이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 중에서도 식물이름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세미’다. 수세미는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말한다. 그런데 수세미의 어원은 바로 식물인 수세미외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에는 그릇을 닦을 때 짚이나 다 자라서 말린 수세미외를 잘라 여기에 양잿물이나 고운 흙을 묻혀 닦았다.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말린 수세미를 잘라보면 작은 실 같은 섬유가 복잡한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그래서 수세미외를 한자어로 ‘사과(絲瓜; 실사, 오이과)’라고 한다.

수세미외는 비염이나 축농증(부비동염),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에 많이 쓴다. 요즘 설거지용품도 말린 수세미외 속과 비슷하게 본떠 만들고 있고 이름도 수세미라고 동일하게 부르고 있다.

서양에도 이런 식의 이름이 있다. 바로 ‘렌즈’다. 렌즈라는 이름은 투명한 유리를 깎아 만든 것으로 망원경이나 안경에 사용한다. 보통 가운데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어 볼록렌즈라고 한다. 그런데 렌즈를 만들어 놓고 보니 모양이 특정식물의 모양과 비슷했다. 바로 ‘렌즈콩’이다.

렌즈콩(Lens culinaris)은 렌틸콩이라고도 부른다. 렌즈콩은 꼬투리 안에 작은 렌즈모양의 콩 알갱이가 두 개씩 들어 있다. 렌즈가 발명된 후 모양이 마치 렌즈콩처럼 생겼다고 해서 렌즈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렌즈콩은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도 주요식량작물로 재배됐다. 렌즈형태의 기구를 활용한 문헌상 기록은 기원전 그리스 시절이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볼록렌즈가 안경으로 만들어져 렌즈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서기 1200년경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렌즈콩 재배가 앞선다.

반대로 특정물건의 이름을 따 식물의 이름을 붙인 경우도 있다. 바로 ‘나팔’꽃이다. 나팔(喇叭)은 원래 악기이름이다. 나팔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의 ‘rappa’라는 악기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喇叭(나팔)’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나팔꽃은 우리말 고유이름은 없었고 옛날에는 견우(牽牛)라고 불렀다. 견우(牽牛)의 의미는 ‘소를 끌다’, 즉 소를 끄는 남자아이로 칠월칠석날 오작교에서 직녀를 만난다는 남자이름이다. 사실 나팔꽃은 중국이름에서는 喇叭花(나팔화), 만주지역에서는 癩叭花(나팔화)로 쓰는데 한글이름은 여기서 차용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나팔꽃처럼 모양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는 쇠무릎지기가 있다. 쇠무릎지기는 우슬(牛膝)이라고도 하는데 줄기마디모양이 소의 무릎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관절질환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는 약초다.

시대상을 대변하는 슬픈 이름도 있다. 바로 며느리밑씻개다. 며느리밑씻개는 사광이아재비풀의 속명으로 작고 날카로운 가시가 촘촘히 박혀있다. 이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과거 여성의 지위, 고통과 억압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름이다.

무심코 불러왔던 이름 속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더니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싯구처럼 이름은 생명이다. 어느 하나 허투로 지어진 이름은 없다. 이름은 대상의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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