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이야기]“인간도 ‘기생충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기생충 이야기]“인간도 ‘기생충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 승인 2013.04.2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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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기생충의 기원에 관해 쓴 적이 있다. 먹을 것을 구하는 데 지친 동물 중 일부가 다른 동물의 몸 안에 기생하는 전략을 쓰면서 기생충이 탄생했다고. 그 결과 기생충은 식량 걱정이 없게 된 것은 물론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천적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게 됐다.

사람이 권태로울 때 별장에서 야한 파티를 하는 것처럼 할 일이 없어진 기생충은 생식에만 몰두했다. 회충 한 마리는 하루에 20만개 가량의 알을 낳으며 광절열두조충은 그보다 많은 100만개의 알을 낳는다. 움직일 필요가 없다보니 이동을 위한 기관은 퇴화됐고 생식기관이 비대해졌다.

하지만 기생이란 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숙주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더 이상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대변에서 기다란 기생충조각이 나오자 석유를 마신 사람처럼 숙주는 기생충을 죽이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쓴다. 그래서 기생충은 월세 밀린 세입자처럼 사람 몸 안에서 숨죽이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오랜 시간 인간의 몸속에서 살았던 기생충 대부분이 별 증상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다. 하물며 숙주를 죽이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종숙주인 곤충을 물에 빠뜨려 죽게 하는 연가시는 지극히 예외적인 기생충일 따름이다.

또 기생충은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평소보다 적게 먹는 일도 없지만 입맛이 당긴다고 더 많이 먹는 일도 없다. 회충의 예를 들어보면 한 마리 있을 때나 백 마리 있을 때나 회충간의 골격 차이는 있을지언정 하나같이 날씬하다.

요즘 사람들이 걱정하는 비만은 기생충에게 있어 다른 세계의 일이다. 자신이 먹을 것만 먹고 젓가락을 놓는 것, 그게 바로 기생충이다. ‘기생충 제국’을 쓴 칼 짐머가 “인간도 기생충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고 일갈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데도 기생충은 무위도식한다는 이유로 큰 욕을 먹고 있으니 숨죽이며 사는 기생충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자신이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는 대신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치인은 기생충에 가깝다. 물론 그들이 하는 일은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것들이니 기생충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가끔은 정치인들이 기생충을 좀 본받았으면 하는 때가 있다.

우선 기생충이 월세 밀린 세입자처럼 조용히 사는 데 비해 일부이긴 하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이 집주인인 것처럼 군다. 또 탐욕스러운 기생충은 없지만 정치인 중 일부는 탐욕의 화신이다.

국회의원은 세비에 관용차에 여러 명의 유급보좌관까지 제공받는데 이것저것 합치면 의원 한 명당 드는 돈만 해도 1년에 5억원 정도다. 이 정도면 일도 하고 자기 식솔들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으련만 이것도 부족해 여기저기서 뇌물을 받거나 권력을 이용해 치부한 의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다소 억울하게 욕을 먹는 기생충과는 달리 정치인의 신뢰가 밑바닥에 머무는 건 자업자득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내각이 구성되지 못했다. 야당의 발목잡기도 일조를 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 내각의 후보자들이 하나같이 탐욕스럽게 살아온 분들이라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에 그런 분들밖에 없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부터라도 그분들이 기생충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회충이 들어있는 유리병을 책상위에 놓고 일한다면 나쁜 마음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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