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욕으로 망친 ‘기생충 사이트’
과욕으로 망친 ‘기생충 사이트’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4.2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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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에 걸린 분들이 우선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당황’이다. 기생충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누가 알아차릴까봐 부끄럽고 가능한 한 빨리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이에 대해 누군가와 상의할 사람이 없어 애만 태우게 된다.
 
문제해결을 위해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와도 누구에게 진단을 받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항문외과 같기도 하고 감염내과가 맞는 것 같고…. 절차가 귀찮아져 의사나 약사에게 찾아갔는데 헛수고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의사나 약사 중에는 기생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애써 찾아갔는데 “이런 건 처음 보는데요?”라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정밀검사를 받으셔야겠네요”라는 답변을 들으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혹시 몰라 인터넷을 찾아보면 잘못된 지식들이 사실과 섞여 더 큰 어지러움을 자아낸다. 기생충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답변을 단 경우가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병에 걸렸다는 당황감, 누구와 애기를 할 수 없는 외로움에 어지러움까지. 필자는 그래서 생각했다. ‘기생충 사이트’를 만들어야 겠다고. 다행히 모 국가기관에서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 사이트를 만들 사람을 구해 결국 ‘기생충 전문 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게 됐다.
 
당시 필자가 제출한 연구계획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기생충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국민 누구나 이 자료에 쉽게 접근하여 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열 달간 필자는 기생충 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그전에도 비슷한 사이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반인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탓에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해 말, 드디어 사이트가 완성됐다. 연구예산을 얻어 진행한 일이라 결과물에 대한 심사를 받았는데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때만 해도 난 의기양양했다. “그럼, 누가 한 일인데.”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이트에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생충에 대해 알려준다면서 ‘선충류’ ‘흡충류’ 등 학계에서 쓰는 분류법을 쓴 것이 화근이었다. 일반인을 위한 사이트인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더 큰 문제는 질의응답. 원래 취지가 ‘기생충에 대해 물어볼 만한 곳이 있어야한다’고 해 질문에 대해 충실한 답변을 해줘야 했기에 사이트에는 질의응답 코너가 있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돼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이 코너를 언론에 공개해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돈을 받기 전과 받은 후의 마음은 너무도 달랐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벌써 그 사이트에 들어와 질문을 하고 있었는데, 언론에 공개된다면 그보다 100배 이상의 사람들이 질문을 올릴 테고 답변만 처리하다 하루가 다 지나갈 상황에 이르렀다. 다른 연구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언론공개를 포기했다. 나중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전에 만들어진 사이트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존재가치를 상실한 곳이 돼 버렸다.
 
그 후 5년이 흘렀다. 기생충에 걸린 사람들은 여전히 당황, 외로움, 어지러움의 3단계 반응을 보이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거 기생충인가요?”라는 다급한 질문연일 올라오고 있다. 그런 질문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파온다. 그때 난 의욕만 앞선 나머지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국가세금을 축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인 것은 바로 죄책감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그 때 만든 기생충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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