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결을 위해 병원 홈페이지에 들어와도 누구에게 진단을 받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항문외과 같기도 하고 감염내과가 맞는 것 같고…. 절차가 귀찮아져 의사나 약사에게 찾아갔는데 헛수고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의사나 약사 중에는 기생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애써 찾아갔는데 “이런 건 처음 보는데요?”라든지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정밀검사를 받으셔야겠네요”라는 답변을 들으면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혹시 몰라 인터넷을 찾아보면 잘못된 지식들이 사실과 섞여 더 큰 어지러움을 자아낸다. 기생충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답변을 단 경우가 많아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병에 걸렸다는 당황감, 누구와 애기를 할 수 없는 외로움에 어지러움까지. 필자는 그래서 생각했다. ‘기생충 사이트’를 만들어야 겠다고. 다행히 모 국가기관에서도 필자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 사이트를 만들 사람을 구해 결국 ‘기생충 전문 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게 됐다.
당시 필자가 제출한 연구계획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기생충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국민 누구나 이 자료에 쉽게 접근하여 각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열 달간 필자는 기생충 사이트를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그전에도 비슷한 사이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반인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탓에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해 말, 드디어 사이트가 완성됐다. 연구예산을 얻어 진행한 일이라 결과물에 대한 심사를 받았는데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때만 해도 난 의기양양했다. “그럼, 누가 한 일인데.”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이트에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생충에 대해 알려준다면서 ‘선충류’ ‘흡충류’ 등 학계에서 쓰는 분류법을 쓴 것이 화근이었다. 일반인을 위한 사이트인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더 큰 문제는 질의응답. 원래 취지가 ‘기생충에 대해 물어볼 만한 곳이 있어야한다’고 해 질문에 대해 충실한 답변을 해줘야 했기에 사이트에는 질의응답 코너가 있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돼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이 코너를 언론에 공개해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돈을 받기 전과 받은 후의 마음은 너무도 달랐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벌써 그 사이트에 들어와 질문을 하고 있었는데, 언론에 공개된다면 그보다 100배 이상의 사람들이 질문을 올릴 테고 답변만 처리하다 하루가 다 지나갈 상황에 이르렀다. 다른 연구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언론공개를 포기했다. 나중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이전에 만들어진 사이트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존재가치를 상실한 곳이 돼 버렸다.
그 후 5년이 흘렀다. 기생충에 걸린 사람들은 여전히 당황, 외로움, 어지러움의 3단계 반응을 보이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거 기생충인가요?”라는 다급한 질문연일 올라오고 있다. 그런 질문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파온다. 그때 난 의욕만 앞선 나머지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국가세금을 축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인 것은 바로 죄책감 때문이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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