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털 동의보감]산후우울증, 시작도 끝도 남편
[멘털 동의보감]산후우울증, 시작도 끝도 남편
  • 경향신문 강용혁 분당마음자리한의원 원장
  • 승인 2013.05.10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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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의 부재는 결국 테러처럼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 9·11테러를 비롯해 지난달 보스턴 마라톤 테러 등에서 보듯, 강자의 핍박과 약자의 보복이란 악순환은 소통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는 한 서로를 더욱 극단적 선택으로만 내몬다.

산후우울증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한 산모가 자신의 아기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했다. 또 산후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 직전까지 갔던 유명인들의 일화도 연일 전해지고 있다. 어느 순간보다 행복해야 할 아기와 산모에게 그 어떤 테러보다 끔찍한 일들이 왜 자꾸 늘어나는 것일까.

세상은 모든 걸 “우울증 때문”이라며 한 산모의 문제로 돌려버린다. “죄 없는 아이까지 왜…”라며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뿐이다. 대신 모성 본능이 가장 강한 시기에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는 묻지 않는다. 모든 건 그저 우울증 때문으로 종결된다. 현대의학에선 출산 후 스트레스 호르몬 증가와 과중한 육아부담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론은 우울증 치료약을 먹거나 심하면 엄마와 아기를 격리하라고 충고한다. 이런 시각 역시 산모에게 원천적 책임을 묻는 태도다.

과연 육아부담 때문에 갓난 자기 자식까지 죽였을까. 그렇다면 현 세대의 육아부담이 예전보다 그토록 심해졌단 말인가. 흔히 할머니들은 “집에서 애 낳고 다음날 바로 애 업고 밭일 하러 갔다”고 말한다. 육아부담이라면 예전이 더 심한 게 아니었을까. 육아부담과 호르몬 변화는 진짜 원인이 아니라 표면적 현상에 불과하다.

산후우울증이란 그림자 뒤엔 남편에 대한 지독한 분노가 숨어 있다. 물론 다른 문제들도 개입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엔 남편과의 소통부재라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할 때 발생한다.

산모의 영양상태도 육아환경도 예전이 훨씬 더 열악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편과 합심하면 소통부재의 고통은 오히려 적다. 반면 요즘은 먹고사는 문제는 나아졌지만 서로 간 갈등은 더욱 늘어났다.

모든 산모에게 느닷없이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아지진 않는다. 그 이면에도 남편과의 소통부재가 있다. 그 어떤 대화나 절박한 호소도 더 이상 내 남편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이 준 극단적 분노다. 그들은 한결같이 “남편과는 더 이상 말이 안 통해요, 남편과 말할수록 모든 게 다 내 잘못이 되고마는 걸요”라고 말한다. 결국 “나만 없어지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 같다”는 위험한 착각에 빠진다.

육체적·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인 아내에 대한 배려 부족이 산후우울증의 시발점이다. 여기에 번번이 자기 입장만 정당화하려는 남편의 태도에 산모는 이내 숨이 막힌다.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 때 분노는 우울로 바뀐다. 동시에 상대를 향하던 화살을 엉뚱하게도 자신에게 겨눈다. 극심한 감정착란 속에 산모와 동일체인 아기까지 함께 공격 대상에 포함시킨다.

자신이 가진 소중한 모든 것을 파멸시켜서라도 분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정작 죽이고 싶도록 미운 것은 남편이자 소통되지 않는 현실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남편에게 소중한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긴밀한 상대에 대한 지독한 분노, 그것이 산후우울증의 본질이다. 또한 모든 소통 통로를 틀어쥔 강대국을 상대로 자폭테러를 감행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를 모두 산모의 호르몬 변화나 육아부담으로만 몰아세우면 테러는 반복되고 수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울증이니까 약이나 먹자’는 남편의 태도는 산모를 더욱 고립시킨다. 테러와의 끝없는 전쟁보다 약자의 분노가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를 살펴야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산후우울증의 시작도 끝도 남편’이라는 말이, 오히려 호르몬이나 육아부담이란 분석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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