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건강이야기] 반려동물의 혈액투석, 늦으면 치명적인 이유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반려동물의 혈액투석, 늦으면 치명적인 이유
  • 서상혁 VIP동물의료센터 원장
  • 승인 2017.09.27 18: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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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환자를 보살피고 조금 늦은 오후에 출근했는데 필자에게로 전화상담 몇 건이 도착해 있었다. 동일한 전화번호로 세 번에 걸쳐 다급하게 찾았다는데 메모에는 ‘혈액투석 관련 상담요망’이라고 적혀있었다.

서상혁 VIP동물의료센터 원장

얼마나 급한 상황일까 걱정하며 전화를 걸었는데 중년의 남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반려동물이 어떤 상황인지 물었더니 이내 목소리가 흔들렸다. 신부전에 걸린 9살 고양이가 치료에도 반응이 없고 계속 신장수치가 오르고 있어 혈액투석을 해보려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 전 사망했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떨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실 필자가 전날 새벽까지 돌봤던 반려동물 역시 신부전이었다. 3일에 걸쳐 혈액투석을 진행했고 전날 마지막 투석을 통해 신장수치가 정상범위로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투석치료를 종료했다.

이 반려동물은 12살 고양이로 8개월 전 동물병원에서 신부전을 진단받고 관리해왔다고 한다. 건강이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최근 병원 방문을 소홀히했는데 갑자기 음식을 거부하고 구역질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진찰결과 신장수치가 매우 상승한 요독증상태였다고. 이에 6일 동안 수액치료를 진행했는데 수치가 떨어지지 않자 혈액투석을 위해 필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 고양이는 3일간의 혈액투석을 통해 신장수치는 정상으로 회복됐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 수치가 상승하더니 투석 종료 4일차에는 본원에 왔을 때의 수치로 다시 높아졌고 결국 며칠 후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오늘도 역시 신장수치가 상승해 며칠간 치료를 했는데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혈액투석을 받고 싶다는 상담전화가 들어왔다. 필자는 상담에 앞서 항상 이렇게 묻는다. “신장수치가 높아진 지 며칠이나 경과됐지요?”

신부전에 걸린 반려동물을 만나면서 무엇보다 가슴 아픈 일은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 이미 신장을 완전히 망가뜨린 이후에나 혈액투석을 한다는 점이다.

신부전으로 인해 노폐물이 배출되지 못하면 그것이 독소로 작용(요독증)해 몸을 손상시킨다. 이 독소는 체내 모든 혈관과 신경을 손상시키고 위장궤양, 췌장염, 폐렴 등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다른 합병증으로 발전하게 된다. 높은 수치의 독소가 며칠만 유지돼도 몸은 빠른 속도로 손상돼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미 전신의 혈관이 손상돼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다발성장기부전‘ 상황으로 귀결돼 아무리 혈액투석을 해서 독소를 제거한다 하더라도 회복되기는 어렵다.

손상된 신체를 회복시키는 것은 그 어떠한 치료도, 약물도 아닌 ‘신체’ 그 자신이다. 즉 혈관이 다시 건강을 되찾고 손상된 세포가 재생되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우리 몸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독소를 빨리 제거해야 하고 장시간 높은 수치의 독소에 노출돼선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신체 회복능력을 잃게 하지 않기 위함’이다. 혈액투석은 효과적으로 독소를 제거해 신체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휴식시간을 제공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급성신부전환자의 경우 일반적인 치료(수액치료)로는 독소를 충분히 제거해줄 수 없고 만성신부전에 급성상태가 동반된 환자(만성신부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최근의 건강상태, 혈관기능저하, 식이, 약물투약, 혹은 다른 내과질환이 동반되는 등의 추가적인 자극으로 ‘급성기가 추가된 만성신부전 상태’) 역시 수액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회복 가능한 임계치’를 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심한 요독증 상황에서 혈액투석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치료이지, 마지막 보루로서 인식돼서는 안 된다.

동물병원에서 혈액투석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반려동물에게 하는 혈액투석이 보호자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물론 혈액투석을 한다고 신장이 정상을 되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급성기상태를 안정화해 다시 만성신부전 상태로 유지·관리할 수 있다. 보통 2~4일 정도 혈액투석을 진행해 독소를 제거하고 신체가 안정화되면 이전처럼 주기적으로 수액치료, 피하수액, 약물 등을 통해 꾸준한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성신부전은 글자 그대로 ‘만성’ 질환이지 갑자기 수치가 치솟아서 사망하는 질환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 혈액요소질소(BUN; Blood Urea Nitrogen) 300 이상, 크레아티닌(Creatinine) 10 이상으로 치솟았던 만성신부전환자가 혈액투석을 받고 나서 1년 이상이나 만성신부전을 유지하고 있는 케이스도 이미 여럿 있다. 정리 장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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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희 2021-12-22 21:26:14
말 못하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권해야지, 무조건 권하면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