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안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남들이 안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5.1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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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말 멧돼지를 먹고 선모충에 감염된 환자 6명이 필자가 몸담은 대학부속병원에 왔을 때 ‘이게 무슨 신의 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일을 할 사람은 필자밖에 없다는 그런 계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선모충환자가 나온 것은 1997년으로 산에서 잡은 오소리를 덜 익혀먹은 4명의 장정이 국내 1호 선모충감염자가 됐다. 기원전으로 거슬러가는 이집트 미라에서 선모충의 흔적이 발견된 바 있고 이슬람교가 돼지고기를 금한 것도 선모충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한 데서 보듯 선모충은 오래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한 질병이었다.

선모충환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중국을 이웃나라로 두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선모충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지만 희한하게도 선모충은 나오지 않았고 97년에 이르러서야 첫 환자들이 나온 거였다.
 

그 후 선모충감염은 6차례나 더 발생했고 감염된 환자 수는 모두 52명에 달했다. 오소리와 자라를 먹고 감염된 사례를 제외하면 그 중 5번이 멧돼지육회를 먹고 감염됐다. 궁금했다. 과연 우리나라의 멧돼지에는 선모충이 얼마나 있을까?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이 일을 한 사람이 없다는 거다. 프랑스, 일본 같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아르헨티나, 중국 등 웬만한 나라들은 모두 수만 마리의 멧돼지를 조사한 자료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그와 비슷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기생충학자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런 상황에 선모충환자를 직접 경험하고 나니 사명감이 생길 수밖에. “멧돼지 육회를 먹는 나라에서 아직까지 선모충 조사가 안 된 건 OECD 국가의 수치다”라는 격문을 써서 국가로부터 연구비를 받았고 환자가 주로 발생한 강원도로 달려가 포수연합회 회장을 만났다.

사람 좋은 회장님은 멧돼지를 잡을 때마다 근육을 떼서 보내준다고 했다. 그로부터 2년간 난 멧돼지근육에 묻혀 살다시피 했다. 선모충 유충은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 않으니 근육을 잘게 갈아 인공소화를 한 뒤 현미경으로 봐야 했는데 그 과정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선모충이라도 자주 나와 주면 좋으련만 아무리 현미경으로 뒤져봐도 선모충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공포감이 밀려왔다. 연구비를 신청할 때 “선모충 유충을 꼭 발견하겠다”고 큰 소리 쳐놨는데 한 마리도 찾지 못하면 보고서를 뭐라고 써야 한단 말인가? 우리나라 멧돼지엔 선모충이 없다고? 야생이다 보니 멧돼지근육에 기생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DNA검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선모충은 아니었다.

그제야 알았다. 왜 아무도 이 일에 뛰어든 기생충학자가 아직까지 없었는지. 멧돼지의 선모충조사는 무척이나 힘들고 잘 될 가능성도 희박한 3D업종의 하나였다. 게다가 이 일은 필자 혼자 하기엔 벅찼다. 프랑스를 보면 2만 마리 가량의 멧돼지를 검사했던데 그러기 위해 수많은 연구진이 ‘국가적 사업’이라 생각하고 공동연구를 했다.

그런데 밑에 딸린 조교도 달랑 하나밖에 없는 내가 겨우 100마리 남짓 조사해 놓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난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보고서 작성일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어 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왜 그렇게 객기를 부렸나’ 하는 회한 말이다.

일이 쉬우면서 결과가 잘 나오는 연구는 남들이 이미 다 했다. 일이 어렵긴 하지만 결과는 틀림없이 나오는 연구들은 남들이 하고 있는 중이다. 기생충학계에서 해야 하지만 아직 못한 연구는 일은 어렵고 결과는 안 나오는 그런 일뿐이다.

“정년퇴임 전까지 남은 20년간 기생충학의 9대 미스테리를 다 풀겠다”고 술자리에서 호언장담한 적이 있다. 그때 술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그 얘기를 기억 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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