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리나 졸리의 선택, 따라 할 필요 없다
앤젤리나 졸리의 선택, 따라 할 필요 없다
  • 박효순 기자
  • 승인 2013.05.2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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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돌연변이’ 있어도 절제 근거 불충분

국내 학계“조기 발견 쉽고 완치율 높아 선별적 대응 필요”
 
최근 미국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시행해 유전성 유방암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세계적인 스타인 만큼 한국에서도 파장이 적잖다. “나도 당장 유전자 검사를 받고 유방절제술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의가 병원마다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앤젤리나 졸리는 배우였던 어머니가 난소암에 걸려 2007년 5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 가족력을 토대로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유방암을 일으키는 브라카1(BRCA1)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돼 수술을 결심한 것이다. 피부는 그대로 살리고 정상 유방조직을 다 들어낸 뒤 보형물을 삽입하는 방법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성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 환자의 5~10%를 차지한다. 매년 1만4000여명의 유방암 환자가 생기고 5년 생존율이 90%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유전성 유방암과 관련한 브라카 유전자 중 BRCA1, BRCA2 유전자 변이는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다. 젊은 나이에도 유방암과 난소암 등 여러 종류의 암이 생기게 된다.
 
유방암학회의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 결과 가족력이 있는 유방암 환자의 BRCA 유전자 변이의 빈도는 25%가량이며, 35세 미만 유방암 환자는 10%가량 변이의 위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BRCA 유전자 변이가 있는 여성에서 70세까지의 유방암 누적발생률은 BRCA1은 72.1%, BRCA2는 66.3%로 조사됐다. 70세까지 난소암의 누적발생률은 BRCA1과 BRCA2에서 각각 24.6%와 11.1%로 나왔다. 한국여성에게서 난소암 발병자수는 매년 2000여명, 5년 생존율은 50% 정도다.

대학병원 유방암센터에서 젊은 여성이 유방촬영 검사를 받고 있다. 유방암 위험을 크게 높이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한 경우 일반인보다 예방 및 자가검진 등에 더 노력하고, 보다 자주 진료와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한다. | 건국대병원 제공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 경우 변이 자체를 없애는 치료법은 아직 없다.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의 책임연구자인 분당서울대병원 김성원 교수(외과)는 “BRCA 변이를 보유한 사람은 암 발생 감시, 예방 치료 및 예방적 수술 등을 통해서 적극 암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예방적 유방절제술은 유방암의 위험을 90% 이상 낮추고, 예방적 난소 절제술은 난소암의 위험을 97% 이상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난소절제술은 유방암의 위험도까지 50%가량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35~40세 사이에 출산이 끝난 여성이라면 난소절제술을 권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방암의 위험이 심각하게 높아지는 특정 유전자(BRCA1, BRCA2)에서 이상이 확인된 경우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학계는 이 같은 치료가 매우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방암은 조기검진이 비교적 쉽게 잘 되고, 조기 암은 97% 이상 완치되는 등 사후 대처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다.
 
유방암학회 송병주 이사장(서울성모병원 유방외과)은 “유명인인 졸리가 수술을 결정했다고 해서 모든 여성이 양측 유방을 절제해야 할 근거가 없다”며 “유전성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 검사 여부도 고위험군일 경우에 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건국대병원 유방암센터 양정현 교수(의료원장, 외과)는 “모든 여성이 유전자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으며 가족 내에 2명 이상의 유방암 환자가 있는 경우처럼 가족성 유방암이 의심되면 의사와 상의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유방암 예방을 위해 미리 절제할 필요는 거의 없다”며 “20대부터 유방암 자가검진, 6개월~1년마다 전문의 진료와 검사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암병원 유방암센터 문형곤 교수는 “정상 유방을 상실하는 데서 오는 정서적 문제나 수술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수술 결과를 충분히 이해한 후 결정할 일”이라며 “유방암에 대한 과도한 공포나 부정확한 정보가 수술 열풍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유방암이나 난소암의 예방적 절제술에 대한 전국 통계는 아직 없다. 분당서울대병원의 결과를 보면 암에 걸리지 않은 환자의 경우 양측 유방절제는 거의 시행되고 있지 않고, 난소절제술은 5% 정도 된다. 한쪽 유방암 환자는 반대편 유방 예방적 절제가 6.5%, 난소 절제는 40% 정도다.
 
현재까지 예방적 유방절제술은 유방암 발생 빈도를 낮출 뿐, 사망률을 낮추었다는 증거가 없다. 하지만 예방적 난소절제술의 경우에는 난소암의 발생률뿐 아니라 사망률까지 낮추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난소를 영구적으로 제거하면 조기폐경 및 폐경 후 증후군, 골다공증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 비용은 보험이 적용되는 대상(고위험군·관련 암환자 등)은 5만~10만원, 일반으로 하면 90만~1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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