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장내 기생충은 면역력을 높여준 ‘오래된 친구’였다
[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장내 기생충은 면역력을 높여준 ‘오래된 친구’였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7.11.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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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JSA(공동경비구역)를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 몸속에서 나온 기생충이 화제다. 이로 인해 북한 병사들과 주민들의 식생활이나 위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기생충이 꼭 박멸해야 할 혐오의 대상만은 아니다. 사실 기생충은 인간의 생존능력과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던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기생충 감염률이 높았다. 어릴 적 채변봉투를 이용한 기생충 박멸사업은 추억 아닌 추억이 됐다. 하지만 기생충 감염률이 높은 이유를 단지 인분 때문으로 설명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기생충은 인간과 같은 포유류의 몸속에서 기생하는 생명체로 태초부터 인류 몸속에 있었고 심지어 공룡의 몸속에도 존재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기생충은 전 세계인의 몸속에 고루 퍼져 있었다. 인간의 몸속에 기생하는 기생충 종류만 해도 392종이나 된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1930년대부터 국가적으로 기생충 박멸사업을 벌여왔다. 1960년도에 들어서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기생충 감염에 의한 빈혈이나 사망률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궤양성대장염이나 크론병, 다발성경화증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유가 몸속에서 사라진 기생충 때문이라면 아이러니하다.

여기에는 기생충에 의해 활성화된 조절T세포가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조절T세포와 함께 각종 면역세포들에 의해 장내 면역체계가 방어상태로 유지되면서 염증을 조절하는 것이다. 심지어 천식이나 아토피피부염, 비만, 동맥경화증이나 고콜레스테롤혈증 등의 대사증후군환자가 늘어난 이유도 기생충이 없어지면서 늘었다는 연구가 있다. 어렵겠지만 북한 주민들의 기생충 감염률과 함께 알레르기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의 유병률 통계가 있다면 의미있는 비교가 될 것 같다.

기생충과 함께 다양한 세균, 바이러스도 우리 몸의 면역을 깨우는 자극원이 돼 왔다. 실제로 어릴 적 잦은 감염은 성장기의 알레르기질환의 발병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지저분한 환경의 시골 농장에서 자란 아이들이 청결한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질환이 적다는 것. 이것을 ‘위생가설’이라고 한다. 위생가설은 ‘오랜 친구 가설(old friends hypothesis)’ 또는 ‘잃어버린 친구 이론(lost friends theory)’이라고도 불린다.

바이러스나 세균을 차단·제거함으로써 치명적인 감염성질환의 위험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몸에 붙어서 살아가는 모든 미생물을 박멸할 수도 없고 박멸할 필요도 없다. 인간의 피부와 내부 장 점막에 붙어서 살아가는 미생물 종류는 100조개가 넘는다. 인간을 이루고 있는 세포수(10조개)의 10배에 해당한다.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95%는 인간에게 별다른 해가 되지 않는다. 청결(위생)이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장내 세균총이다. 유해균이든 유익균이든 모두 세균이다. 면역력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건강기능식품으로 많이 먹는 프리바이오틱스(유산균)도 바로 세균이다. 세균을 먹어서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것도 의료혁명 중 하나다. 그렇다면 기생충을 먹어서 치료하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로 돼지편충을 먹어서 염증성장질환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기는 하다. 바로 기생충요법이다.

기생충요법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돼지편충 수천 개를 작은 캡슐에 넣어 먹는 것으로 장내에서 수 주간 기생하다 성체가 되면 대변을 통해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러한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다. 조절 가능한 상태로 기생충에 의도적 감염이 돼 있는 동안 장내 점막의 면역체계는 안정되고 염증이 조절되는 것이다. 현재 기생충요법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기생충은 관리돼야 할 대상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박멸’ 될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다고 기생충에 일부러 감염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기생충을 포함한 미생물들에 대한 청결은 인간의 건강에 해를 입히지 않을 정도로만 관리하면 된다. 그래도 분명히 기억해야 할 점은 기생충이 인간의 ‘잃어버린 오래된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정리 장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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