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박멸협회의 노고에 깊이 감사해야
기생충박멸협회의 노고에 깊이 감사해야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5.31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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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정부가 기생충박멸협회를 만들고 전 국민 기생충감염률조사를 시작한 것은 1971년부터였다. 84.3%의 감염률에 놀란 정부는 이후 5년마다 전국조사를 실시함으로써 기생충 후진국의 멍에를 벗고자 했다. 

5년마다 전국조사는 어김없이 시행됐고 조사요원들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대변을 걷었다. 한번 목표로 삼은 집은 몇 번을 방문하더라도 대변을 받아냈다는 것이 당시 전국조사를 지켜본 사람들의 회고다.

1976년 63%, 1981년 41%였던 기생충감염률은 1986년 12.9%로 급격한 감소를 보였고 본래 계획보다 1년이 늦어진 7차 조사에서는 3.8%로 선진국 수준에 근접한 감염률을 기록한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그 후 기생충감염률은 2~3%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는데 얼마 전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3년 전국 감염률은 2.6%였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으로 잡는다면 130만명 정도의 기생충감염자가 있다는 것이다.

기사를 본 지인이 말한다. “기생충도 없는데 이제 뭐 먹고 살려고 그래?” 여기에 대해 개콘의 한 코너인 ‘네 가지’ 버전으로 얘기해보자.

“그래, 기생충 다 없어져서 굶어죽게 생겼다. 연구할 기생충이 없다보니 3년째 연구를 못해서 얼굴이 노랗게 떠버렸네? 기생충이 다 없어져 버리면 큰일인데, 안되겠다. 대형마트 과일판매대에 몰래 잠입해서 회충알이라도 잔뜩 뿌려버려야지. 사과 위에도 뿌리고 배 위에다가도 뿌리고. 조금만 있으면 서울시민들 단체로 기생충 걸렸다고 난리겠지? 아유, 신나. 이제 더 이상 굶어죽을 염려가 없겠네? 덩실덩실 춤을 추세.”

이렇게 말할 것 같은가? 절대 그렇지 않다. 기생충학자라면 80%대를 넘나들던 시절이 그리울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오해하지 마시라. 필자는 기생충이 3% 이하로 떨어진 지금이 훨씬 더 좋다.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먼저 이 질문에 답을 해보시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충학자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머렐 박사나 크로스 박사 등 언뜻 떠오르는 사람들은 다 미국사람이다. 미국에 기생충이 많아서?

천만의 말씀이다. 기생충이 많은 남미나 아프리카엔 유명한 기생충학자가 오히려 드물다. 왜일까? 기생충학은 기생충을 통해 인류건강을 증진시키는 연구를 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그 나라에 기생충이 우글우글하다면 기생충학자는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까? 맞다. 기생충박멸이다.

실제로 1980년까지 우리나라에서 했던 연구의 대부분은 “A마을 주민들의 회충감염률이 90%다”라든지, “B마을 주민들을 구충제로 치료했는데 두 달 뒤에 가니까 여전히 기생충이 우글거리더라” 등이 고작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기생충에 대한 연구다운 연구가 시작된 것은 기생충감염률이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진 1980년대 말이다. ‘회충은 3개짜리 입술을 가졌던데 걔네들도 키스를 하는가?’ 같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구가 그때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기생충감염률이 2%대로 줄어들기까지 기생충박멸협회에 종사한 분들의 노고는 실로 대단했다. 5년마다 시행되는 전국조사 이외에도 일반주민, 농어촌주민, 학생 등을 대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대변검사를 시행했으니 말이다. 남의 대변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분들의 투철한 사명감이 아니었던들 기생충의 급격한 감소는 없었을 것이다.

기생충이 웬만큼 사라진 1986년 말, 기생충박멸협회는 건강관리협회(건협)로 이름을 바꿨고 새 이름에 걸맞게 생활습관병 조기발견과 예방을 위한 건강검진 등의 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건강 지킴이로 우뚝 서 있는 건협, 과거에 비하면 기생충 관련 업무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건협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기생충연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건협.”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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