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작은 물건을 잡을 때 새끼손가락이 벌어지는 이유
[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작은 물건을 잡을 때 새끼손가락이 벌어지는 이유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8.03.27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주위를 둘러보면 가벼운 종이컵이나 작은 찻잔을 잡을 때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새끼손가락이 벌어져 보인다. 무심코 하는 행동 같지만 새끼손가락이 벌어져 있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사람의 인연은 태어나기 전부터 새끼손가락에 묶인 붉은 실로 연결된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랑을 약속할 때는 새끼손가락을 건다. 과거 유럽에서는 상류층 여성이 마음에 드는 남성을 넌지시 가리킬 때 새끼손가락을 사용했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새끼손가락을 영어로 ‘pinky finger’라고도 한다. 약하면서도 애틋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왜 작은 찻잔을 잡을 때 새끼손가락을 잘 사용하지 않는 걸까. 이러한 행동양식은 많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고 논쟁거리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관련내용을 찾아보니 그 해답을 과거 중세 유럽 상류층의 테이블매너에서 찾기도 했다. 
 
당시 포도주를 마실 때 잔을 시원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급적 체온의 영향을 덜 받고자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손잡이가 가느다란 와인 잔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작은 찻잔에 차를 마실 때 찻잔의 손잡이가 너무 작아 모든 손가락을 이용해 잡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새끼손가락을 벌리고 찻잔을 잡는 것은 상류층의 매너였다. 

과거 영국 귀족의 잔은 손잡이도 작았는데 이 때 상류층은 새끼손가락만 벌리고 왕족은 약지와 새끼손가락 모두를 벌려서 잡았다. 손잡이를 덜 잡을수록 귀족에 가까웠는데 그 이유가 미천한 하인들이 정리한 잔과의 접촉을 가급적 줄이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여기에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조미료를 집었는데 물기가 묻으면 더 많이 찍히기 때문에 새끼손가락을 마른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새끼손가락을 벌려 찻잔을 잡은 것은 유럽 상류층이나 귀족의 행동패턴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노소,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며 인종이나 대륙과도 무관하다. 갓난아이들도 유심히 살펴보면 젖병을 잡을 때 간혹 새끼손가락이 벌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학습이나 교육이 아니라 태생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합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손가락의 해부학적인 신경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가락을 지배하는 신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다섯 손가락은 정중신경, 요골신경, 척골신경 등 3개의 신경이 지배한다. 

이 중 엄지, 검지, 중지, 약지 등 네 손가락은 정중신경과 요골신경의 지배를 함께 받는다. 정중신경은 손바닥을 지나 엄지, 검지, 중지, 약지로 퍼져있고 요골신경은 손등을 지나 정중신경 지배와 동일한 네 손가락으로 퍼져있다. 이 네 개의 손가락은 그만큼 한꺼번에 움직이기도 쉽고 비교적 강한 힘을 동시에 줄 수 있다.

반면 새끼손가락은 척골신경만 지배한다. 척골신경은 새끼손가락을 주로 지배하면서 약지로도 작은 한 가지가 뻗어 있다. 즉 척골신경이 독립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에 새끼손가락을 움직임이기 위해서는 별도의 명령이 필요하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작은 물체를 들어 올릴 때는 굳이 사용할 필요도 없고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벌어지는 것이다.

작은 컵을 잡을 때 새끼손가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매너도 아니고 습관도 아니다. 여성에서 더욱 빈번하게 관찰되는 이유는 다소곳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에 비해 척골신경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끼손가락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새끼손가락은 상황에 따라 벌어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